오근선(농어촌기본소득 해남운동본부 사무국장)

지방소멸의 방지턱, 지역 균형 주춧돌, 지역 회생의 불쏘시개라는 내용을 담고 해남에 농어촌기본소득운동본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 사회단체가 총망라돼 결성되었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뚜렷한 성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그간 운영위 모임을 통한 저변확대, 3~4차례에 걸친 기본소득 관련 포럼과 토론회를 통해 농어촌 기본소득에 대해, 전남형 기본소득 시행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중이다.

해남군 농어촌 기본소득 실현방안에 대한 교육과 주민발의 조례안 마련, 10강 20시간에 걸친 지방 살림살이 학교 운영으로 중앙정부는 어떻게 세입을 마련하고 어디에 돈을 쓸가? 전남도 기초단체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쓸까? 전남 기초단체 결산 현황 문제점 개선방안, 전남 기초단체 이월금 및 순세계잉여금 분석, 재무제표 개론 회계자료 읽는 방법, 농업분야 각 세부사업 집행내역 살펴보기 등에 대한 학습을 통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돈이 없어서 기본소득을 시행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예산은 정치투쟁의 결과이자 기록이기에 얼마나 많은 주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절실함으로 직접 요구하느냐에 달려있다. 공동체 회복과 행복권을 추구하는 마음을 모아 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실현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요인과 집행부의 홍보 부족 등 대내외 턱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 속도가 나고 있지는 않지만 전국 농어촌기본소득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연대 협력하며 꺼지지 않은 불씨, 움터 자라는 새싹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18세기 영국인 토마스 페인이 사회적으로 제기하여 미국 독립운동의 논리와 프랑스혁명의 이론을 제공한 기본소득 개념. 그간 꿈틀거리며 밑에 있었던 기본소득의 씨앗은 지난 대선 과정을 통하여 널리 뿌려졌고 적당한 땅과 햇볕을 만난 곳에서는 작은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전남지역만 하더라도 진도군을 시작으로 구례군, 영암군, 무안군, 강진군, 고흥군 등에서 주민발의 조례청구와 면 단위까지 조직이 확대되고 시범사업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곳도 있다. 이런 분위기와 훈풍이 지속되다 보면 그렇지 못한 곳들도 언젠가는 신록같이 푸르름으로 물결치리라.

기본소득을 안심소득, 기회소득, 활력소득, 공익가치소득, 햇빛소득 등으로 개념은 일치하지만 다른 명칭으로 고민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수 없이 많은 정책을 내고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막지 못한 인구감소, 지역소멸과 불균형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소득인 기본소득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는 피땀을 흘려 얻어야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에 오는 과정에서 투쟁의 성과물이 엉뚱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함께 노력해서 얻은 성과라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88년 수세 투쟁 때처럼 이해 당사자들이 나서서 대회에 참석하고 의견을 내고 납부고지서를 반납하며 거부 서명을 하는 등 구체적 행동에 나설 때 비로소 성과가 달콤하게 나에게 안기는 것이다. 앞장선 활동가 몇몇과 의원 한두 명의 대변으로 조례가 제정되고 혜택이 돌아간다 한들 돈 몇만 원으로 농업농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스스로 나서서 주민발의 조례 서명에 참여하고, 대회에 참여하며, 끊임없는 주장과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주변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었을 때 성과물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종잣돈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농어촌기본소득운동은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빠른 성과보다는 공감대 확대와 민주역량 강화, 스스로 참여의 의미 부여로 여유로운 걸음걸이를 걷고자 한다. 때가 되면 싹이 나고 잎이 무성해지는 순리를 굳게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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