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9대손 거주 '작은 집'
대패 사용 없이 개항기 특징
윤철하 고택 문화재 등록 준비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현산면 초호길 고택의 전경.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현산면 초호길 고택의 전경.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땅끝 해남은 조선 말기 부유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고택이 많다. 현산면 초호리는 해남 윤씨와 임씨가 모여 살던 집성촌이다. 그런데 이 마을 천석꾼 부자 윤철하 고택의 담을 경계로 작은집이 지어져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윤철하 고택 옆 '초호길 39' 고택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박태기나무와 석류나무가 보이고, 돌 틈 사이사이 수선화, 국화, 철쭉이 봄 인사하듯 반기는 작은 정원과 왼쪽에는 항아리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너른 밭이 보인다.

이 고택은 윤두서의 7대손인 윤철하가 둘째 아들 재덕이 태어나자 출가하면 살게 할 집으로 큰 집(윤철하 고택)과 똑같은 형태로 지은 집으로, 일명 작은집이라 불린다. 작은집은 윤재덕 부부가 타계한 후 10년 동안 비어있다가 6년 전 서울에 살던 아들 윤용(76·윤철하의 손자) 씨가 내려와 거주하고 있다.

윤용 씨는 초호리 고택에 대해 "-자형으로 지어진 작은집 안채는 윤철하 고택의 홑집(방이 한 줄로만 배열된 집)과 달리 겹집(한 용마루 아래 간살이의 일부는 한 줄로 배치되고 일부는 앞뒤 두 줄로 배치되어 있는 집)으로 지어져 두 칸의 방으로 깊고 넓으며 대청마루는 혼례를 치를 정도로 넓은 것이 특징"이라며 "명지대 교수이자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우웅 교수는 오른쪽 측면에 자리한 창고의 경우 통나무를 대패로 깎아내지 않고 형태 그대로 살려 만들어져 매우 특별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사랑채 상량문에 새겨진 병자년 기록으로 고택이 개항기에 신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 고택이 비어있던 10년간 태풍에 아래채와 중문, 대문간, 곡식 창고 등이 허물어졌지만 사랑채, 장독대, 우물 등은 남아 있다. 고즈넉한 정원의 멋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고택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윤용 씨의 8촌인 윤개하(83) 씨는 "예전 초호리는 해남 윤씨, 장흥 임씨가 살던 마을이었는데 윤씨의 경우 모두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이제 세 분만 살고 있어 서운하다"라며 "작은집도 윤철하 고택으로 지정되어 자손들이 그 명맥을 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문화재청 중요민속문화재 명칭 변경 지정(2월 28일자)에 따라 해남 윤두서 고택은 해남 공재 고택으로, 윤철하 고택(제153호)은 1984년 문화재 지정 당시 소유자였던 사촌 형 윤탁 가옥 대신 안채 상량문에 남은 기록에 따라 1906년 당시 건립자인 윤철하 고택으로 변경된 상태다.

윤용 씨는 이와 관련 "초호리 39 고택 역시 할아버지(윤철하)가 아버지(윤재덕)의 출가를 위해 지은 집으로 윤철하 고택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문화재청에 의뢰해 문화재 등록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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