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회 "예산도 없고 일할 사람이 없다"하소연
해남군 "자치역량 강화로 조직 내실화가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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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면주민자치회가 상인회와 함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좌일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사진은 오랜만에 북적인 지난해 6월 18일 장날 모습.
▲계곡면주민자치회가 지난해 12월 20일 계곡초등 강당에서 개최한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손 모양의 기구를 들어 의제 선정을 위한 투표를 하고 있다.
▲계곡면주민자치회가 지난해 12월 20일 계곡초등 강당에서 개최한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손 모양의 기구를 들어 의제 선정을 위한 투표를 하고 있다.

해남에 주민자치회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풀뿌리 주민자치가 관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민자치회 2기를 맞아 현황, 문제점, 과제 등을 주민자치회와 해남군의 입장을 통해 진단한다.

올해 주민자치회 전환 전면 유보

△주민자치회 현황= 해남의 14개 읍면 가운데 절반은 주민자치회, 나머지 절반은 주민자치위원회로 운영되고 있다. 해남군은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20년 12월 '해남군 주민자치회 시범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듬해 삼산면주민자치회가 처음으로 창립총회를 가졌다. 다만 주민자치회는 북일면이 먼저 출범하고 삼산, 계곡, 북평, 황산면에서 잇따라 돛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산이와 옥천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했으며 나머지 7개 면은 주민자치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행정에 단순 자문이나 심의 역할에 그쳤다면 주민자치회는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고 일부 행정기능도 수행하는 등 포괄적인 권한을 갖는다.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문제를 논의하고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명실공히 풀뿌리 자치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해남군은 당초 7곳의 주민자치위원회도 지난해 말까지 주민자치회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며 올해 말까지는 주민자치회 전환을 유보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송지, 현산, 마산, 화산면 등이 주민자치회 전환을 추진했으나 군의 이런 입장에 발목이 잡혔다.

군은 이런 방침을 지난 1월 14개 읍면 순회설명회에서 충분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주민자치회도 몇몇 소수 위원에 의해 운영되면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자치회 전환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올해는 주민자치회(위원회)의 조직을 강화하고 교육에 역점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해남의 주민자치회는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순천 다음으로 많으며, 나주(1곳), 함평(2곳) 등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모범적인 해남형 주민자치회 모델을 만들었어야 하는 데 서둘러 주민자치회를 출범시키면서 내실화를 기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주민자치회에 대한 기조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대해 주민자치회 전환을 추진한 자치위원회는 내심 불편한 기색이다. 화산면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해 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주민총회에서 주민자치회 전환을 1호 의안으로 채택하고 5개의 의제도 발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군은 '주민총회는 연습'이라며 신청서류 자체를 접수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다른 곳에서 선진지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도 하는 데 군이 가로막는 것이 바로 관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마산면주민자치위원회도 올해 초 군이 실적을 따지며 주민자치회 전환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실적을 군에 보고하는 사항도 아닌데 이를 이유로 거부한 것에 대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제약요소 많아 너무 힘들다"

△자치회장 연임 왜 안 하나= 2년 전 의욕적으로 출범한 5개 주민자치회는 2기를 맞아 새로운 주민자치회장 선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강한 요청에도 연임하겠다는 자치회장은 단 한 명도 없다. 아직 정착되지 않는 자치회를 이끌어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13일로 임기가 끝난 조정현 북평면주민자치회장은 "자신의 역량에 문제가 있지만 함께 주민자치회를 이끌어갈 사람들을 관리하기가 힘들다"면서 "자치회장이 혼자 할 수 없어 서로 어울리고 자주 만나야 하는데 자치위원 대부분이 직장인이어서 활동하는데 많은 제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치회 일할 시간도 부족하고 안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노력을 들여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남선 계곡면주민자치회장은 일반 직장과 비교하면 자치회장 이직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김 자치회장은 "주민자치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소수만 참여하면서 관심이 부족하다"면서 "시간을 빼앗기며 생업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고 회비도 갹출하다 보니 어려움을 토로하는 위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전히 관치에 익숙해 주민자치회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인식이 낮은 것도 자치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 사의를 표명한 경우도 발생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강정태 옥천면주민자치회장은 6개월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퇴 배경으로 본인은 시간적으로 개인 일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행정과 주민자치회의 중간 조직인 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치기능이 훼손되는 상황이 사퇴를 결심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난 2021년 설립된 해남군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는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등을 해오다 올해부터 주민자치 지원업무도 시작했으나 행정에 치우친 업무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옥천면주민자치회는 지난 11일 정기회에서 차기 자치회장을 선출하려고 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일단 5월로 미룬 상태이다.

주민자치회장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2기 자치회장 선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계곡면주민자치회는 2기 주민자치회장 후보 등록공고를 두 차례 냈으나 접수자가 한 명도 나서지 않았다. 이에 오는 18일 정기회의에서 후임 자치회장을 추대할 예정이다.

행정 관여 바탕은 '자치회 불신'

△"관치냐, 협치냐"= 5개 주민자치회가 2기를 맞고 있으나 여전히 행정 주도의 관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치는 주로 예산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A면 주민자치회장은 "아직 주민자치회의 역량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군의 모든 관련 서류는 면사무소를 통해 전달되고 제출하는 시스템에서 관치라는 말이 나온다"며 "면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보완 지시를 하기 때문에 통제로 비쳐진다"고 말했다.

공모사업을 통한 예산지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모사업은 주민자치회가 줄을 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모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주민자치회가 많다는 것.

B면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자치회 2기로 접어들면서 자치위원들이 그동안 받았던 교육은 모두 무시하고 다시 6시간의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면서 "주민자치회가 활동하고 있음에도 교육과정 접수를 면사무소에서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주민자치회에 대한 이런 관치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해남군 관계자는 "주민자치회는 월 1회 정기회를 갖도록 조례에 규정되어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면서 "주민자치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자치회에서 원하는 날짜에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면사무소에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자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교육을 통해 회의에 익숙하지 않는 자치위원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개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주민자치 지원관이 사무보조

△예산지원 무엇이 있나= 군은 지난해 사무국장 인건비 명목으로 10개월간 70만원씩 지원했으나 올해부터는 민간인을 기간제로 채용한 주민자치 지원관을 두고 사무업무를 보도록 하고 있다. 현재 주민자치 지원관을 희망한 13개 주민자치회(위원회)에 8개월간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문화여가 프로그램, 주민자치위원의 선진지 시찰,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자치 지원관은 매일 면사무소에 출퇴근 신고를 해야 하고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군청에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면서 "주민자치회 일을 보조하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은 하되 행정 간섭은 최소화

△주민자치회 활성화 과제= 주민자치회는 말 그대로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낮은 수준이다.

주민자치회를 2년간 이끌어온 자치회장들이 토로하는 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부족이다.

한 주민자치회장은 "자치위원들의 인식도 문제이지만 주민들도 혜택만 받으려고 한다"면서 "공동체 발전을 위한 의견을 내고 해결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관치의 습성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정적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주민자치회가 활성화의 길로 들어선다고 주문하고 있다.

또 다른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자치회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꽃"이라며 "행정에서는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는지 발 벗고 나서야 하지만 요구만 많은 귀찮은 존재로 여기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깔려있다"고 했다. 주민자치회가 취지에 걸맞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자양분으로 삼아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고 행정도 간섭을 줄이고 활성화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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