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종(농민운동가)

형님! 지난겨울은 무던히도 추웠지요. 삭풍에 귀때기 날라 갈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금년 같은 추위는 생전에 처음이라고 했지요.

형님! 형님은 꽃을 너무도 좋아했어요. 꽃 중에서도 진달래꽃을 제일 좋아한다 했지요. 감옥살이 하면서도 4년을 꽃을 가꾸며 지냈다고 자랑삼아 말씀 하셨어요. 그래서 봄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애타도록 기다렸나요?

삼 년 전 형님은 산골 언덕배기 허름한 집을 장만하고 생전 처음으로 집을 갖게 됐다고 무척이나 기뻐하셨지요. 집 뒤로 산이 있어 좋고, 동백나무가 있어 좋다고 하셨어요. 틈틈이 뜰 안에 오만가지 꽃나무를 심었지요. 봄, 여름, 가을 끊임없이 당신의 집 뜰 안에는 꽃이 피고 지고, 지고 피었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를 부르며 얼마나 좋아했나요. 그러나 이제 그 노래 다시 들을 수 없게 됐습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을 어루만질 손길도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형님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쫄랑쫄랑 따라붙는 얻어왔다는 강아지도 더 이상 주인의 발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병아리를 깨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토종닭도 형님의 따뜻한 손길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지들 오면 쉬어가고 자고 가도록 널따란 집 짓겠다고 시작한 집도 미완성으로 남아 형님의 손길만 애타게 기다릴 뿐입니다. 이토록 형님의 봄은 잔인하게 왔습니다.

형님! 형님의 겉모습과 속마음은 항상 한결같았지요. 천진난만한 미소년으로 해맑게 웃으시며 빈부귀천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나이와도 상관없이 모든 이의 벗으로 사셨습니다. 자신의 것을 조금도 챙겨 두는 법 없이 모든 걸 다 내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형님을 만나면 쌀이나 용돈을 챙겨드리지만 금세 다른 사람에게 다 퍼주고 당신은 항상 빈털터리였습니다. 돈이 생기기가 바쁘게 책으로 바꿔 누구에게나 선물하곤 했습니다. 형님은 먹고 자고 입는 것이 초라할 정도로 소박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욕심만은 대단했습니다. 만인이 평등하고 소외와 억압 받지 않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소망은 너무도 컸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일이라면 새벽이고 밤중이고 수 천리를 헤매고 다니는 일에 신명을 다 바쳤습니다. 불원천리 해외에서 까지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무도 순수하고 욕심이 없어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형님! 형님의 민중에 대한 사랑은 너무도 뜨거웠고 끝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계급성을 강조하면서 '너희들은 민중의 대한 애정이 없다.'고 늘 꾸짖었습니다. 형님의 민중에 대한 애정은 곧 동지에 대한 애정으로, 동지에 대한 애정은 조직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키고 이 땅의 모든 민중이 하나 되고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형님을 민중의 벗,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합니다.

형님! 이제 그만 무거운 짐 훌훌 다 내려놓으세요. 못 다한 일 저희들이 이고 지고 갈게요. 뜰 안에 꽃나무도 잘 가꾸고, 쫄랑거리며 따라붙었던 강아지며, 알에서 깨어난 새 생명 병아리도 잘 키울 게요. 못다 지은 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만들게요. 만인이 형님의 뜻을 기리며 쉬어가고 머물 수 있도록......

아스팔트 농사꾼 정광훈, 진정한 자유인 정광훈, 낭만적 혁명가 정광훈 형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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