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해남고 교사)

이정식(해남고 교사)
이정식(해남고 교사)
몇 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되기 전날 밤, 높으신 '그들'만이 금감원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금을 인출했단다. 힘들게 푼돈 모아 저축한 선량한(그들은 선량하다기 보다 능력이 없다고 표현할 것이다) 백성은 돈을 뜯기며 분노할 뿐 해결할 방도가 없다. 그저 대통령이 금감원을 찾아 분노하는 모습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청준은 그들만의 세상을 풍자하여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을 쓴 모양이다.

무리짓기는 인간 사회의 본능적 속성이다. 비슷비슷한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공유하고 울타리를 높이 쌓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관계를 맺고 집단에 속하려 하고, 그들 무리의 관점에서 다른 무리를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권력과 힘을 가진 '그들'만이 예금을 인출하더라도 그들은 너무 당연하다. 울타리는 점점 높아만 가서 밖에서 안의 말을 엿듣기는 여간 힘들고, 그 울타리를 넘어가기는 천지개벽하지 않는 한 힘들다. 무슨 팰리스니 캐슬이니 하면서 그들만이 모이는 것은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인간 속성은 아마도 이기심일 것이다. 그들은 이기심으로 경제나 사회를 이루는 기본 골격을 설명한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책(장하준 저)을 그저 순진한('순진한'이라는 단어를 그들은 '바보같은'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사용한다) 학자의 이야기로 치부한다. 오로지 기업과 경제는 이기심에 의해서 굴러갈 뿐이고 사회의 모든 것도 심지어 교육도 이기심이 기본이다.

누가 뭐라해도 자녀 교육만큼 확실하게 이기적인 것 같다. 생물의 원초적 속성이 이기적이니 자녀의 이기적인 교육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자기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고자 하는 속성을 '이기적 유전자'라 표현했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들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 만의 무리에 포함되기를 원한다. 또한 그 울타리가 보다 높게 둘러싸이길 원한다. 경쟁에서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고, 경쟁이 어려울 것 같으면 유학을 하든 다른 방법을 도모한다.

하지만 학교는 이기심만으로 설명을 될 수 없다. 아마도 이기심과 공평함이 공존해야 하는 곳이 학교일 것이다. 자기의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여 출세하기를 장려하면서 공평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나눔과 배려가 있어야 하고, 같이 사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도, 살아가는 방법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경쟁을 부추키는 교육정책으로 나타나는 여러 문제가 언론에 회자된다. 그 기본은 경쟁이고, 경쟁의 기본은 이기심을 북돋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쟁하는 학교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몰입해야 하고, 그렇게 되다보면 공정함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딜레마일 수 밖에 없다.

해남의 학생들은 순진하고 해맑다. 느슨하고 산만한 경쟁은 순진하게 만들고 절박함이 없는 생활은 해맑게 만든다. 해남의 학부모는 도시에서 경쟁하며 실력을 쌓아가는 학생들을 목격하거나 그런 학부모와 정보교환이 적어 아등바등하는 학생들을 다그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하는 모습은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순진하고 해맑다. 순진하다는 말이 좋은 의미로 계속 들렸으면 좋겠다.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여니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 개구리 소리도 잊고 살았는지. 이기심과 경쟁만을 외치며 치닫던 학교생활이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것을 잊고 살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아름다움과 진실된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은 경쟁과 이기심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 우상만을 꿈꾸면 사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이기심과 울타리, 무리짓기, '당신들의 천국'으로 심사가 뒤틀린 지금, 빗소리와 개구리 합창을 들으며 모든 것을 잊고 싶은 것도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모든 것을 잊고 우거지는 숲을 걸으면서 봄을 느끼고 싶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