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복희(언론인)

채복희(언론인)
채복희(언론인)
"어흥! 울음 안 그치면 호랑이가 물어간다~!" 요즘에는 통할 리가 없지만 옛날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유아용 협박(?)이었다. 말귀는 좀 알아듣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아기들 대상이다. 이게 어느 시절까지, 또 몇 살이 넘으면 안 먹히는지 민속학자나 되면 모를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관심 기울일 턱이 없다.

그런데 요즘 비슷한 화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길면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던 농협전산망 사고가 알고 보니 "북한 소행"이란다. 농담이 아니라 어엿한 검찰의 수사결과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온갖 패러디가 나돌고 있다. 뒷집 강아지가 짖어도 "북한 소행", 앞집 자동차 바퀴가 고장나도 "북한 소행"아니냐며 조롱하는 댓글이 달린다. '대한민국 검찰'을 우습게 보거나 천안함 사고를 삐딱하게 바라본 이른바 '좌빨' 영향 때문에 이런 정서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해남 땅끝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금융기관이 농(수)협인지라 그만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단하나 이유 때문에 전산사고에 관심이 컸다. 면 소재지 농협까지는 10여km가 떨어져 있지만 그만해도 얼마나 좋은가. 단조로운 시골의 삶에서는 갑자기 현금이 필요할 경우가 많지 않는데다 필요한 만큼 조금씩 찾아 장이나 보면 되기 때문에 농협에서 처리되는 갖가지 금융업무는 농촌생활 중 요긴한 부분이며 그런만큼 참 고마운 노릇이다. 또한 도시와 농촌을 잇는 전산망에 의해 모든 거래는 그 안에서 안전하게 이뤄지니 이는 농촌의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한 계기가 되었다.

도시에는 농협뿐만 아니라 제1,2 금융권부터 3금융권까지 수많은 기관들이 업무를 본다. 도시인들은 따라서 금융기관 선택의 폭이 넓어 이용에 따른 혜택을 꼼꼼히 살펴 입맛에 맞는 곳을 고를 수가 있다. 그러나 땅끝에 사는 경우 농협이 유일하고, 금융권은 아니지만 우체국이 비슷한 업무를 보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용할 곳은 두 기관밖에 없다. 게다가 농협은 탄생부터가 농업협동조합이라는 분명한 설립 목적이 있기 때문에 농협과 농촌은 한세기 가까이 공동운명체로 함께 존재해 왔다. 하지만 농협은 당초 취지에 반하는 유통과 금융업에 발을 딛고 그에 따른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등 수십년 동안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복마전처럼 인식돼 온 것도 사실이다.

현 정권 들어서도 대통령이 직설적으로 농협 개혁을 요구하고 비리척결의지를 밝힌 것도 그간 지나치게 정도(正道)를 넘어선 농협의 행태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터졌기 때문일까, "북한소행"이라는 발표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아기에게 "쉿! 호랑이 나왔네"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민=철부지' 등식이다.

단위농협 조합장 선거철이면 해당 지역 곳곳에서 온갖 잡음들이 흘러나오고 급기야 당선 전후 관련자 수사와 구속이 끊이지 않아 왔다. 대개 불법선거비리와 연루되어서이다. 해남에서도 돈봉투를 돌린 조합장 후보와 당선자 구속이 해마다 이어졌다. 농협중앙회나 단위농협 모두 이런 정도면 그 조직이 과연 온전하고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년 풋풋하고 능력 출중한 젊은이들이 '신이 아끼는 직장' 농협의 신입사원이 되어 자부심 넘치는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전국 농협 직원들은 각 지역 내에서 신망과 부러움을 받으며 근무에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실망스러운 전산망 사고였다. 정보화 시대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는데 알고보니 실핏줄 전산망을 가진 농협의 중요성을 알고 북한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서였나보다. 땅끝에서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금융전산망에 닥친 사고라니 도무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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