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계곡사정교회 목사)
김영일(계곡사정교회 목사)
서구 중세 시대만 해도 교회(가톨릭)가 세상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과학의 영역까지 독점했으니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천동설(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에 살면서 인간과 지구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종교권력의 오만과 독선에 제동을 건 사람이 갈릴레오였다. 이미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는 태양중심설)을 망원경을 발명하여 관찰함으로써 그 이론이 사실임을 입증하였다.

이에 교회는 반격에 나섰다. 지동설을 인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교회가 선전해왔던 신의 천지창조와 관련해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의 사기극이 탄로날까봐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그가 주장한 지동설이 잘못되었음을, 신에 대한 불경죄를 저질렀음을 자백하도록 협박하였다. 권력자들이 단골 메뉴로 구사하는 '허위자백' 을 강요한 것이다. 재판정을 나오면서 갈릴레오가 내뱉은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직접 관찰을 통해 지구를 넘어 우주만물로까지 신과 믿음의 영역을 확장하려한 것이다. 지구가 돈다고 해서 신이 부정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신을 온전하게 '긍정'한 것이다. 그래서 재판정을 나오며 그가 진실로 하고자 했던 말은 그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가 아닐까.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일본을 덮친 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원전) 폭발 사건으로 일본이 그간 자랑해오던 핵발전소 안전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한 전 세계 사람들은, 이제 찬성이든 중립이든 대놓고 핵발전소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핵에너지의 가공할 만한 위력 앞에서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한 존재임을 체험한 것이다. 그동안 핵을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원자력-원전-방폐장 등의 아톰(Atom)이 들어가는 용어를 쓰고, 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핵에너지-핵발전소-핵폐기장 등의 핵(Nucleus)으로 맞서고 있다.

사실 원자력과 핵에너지는 동의어지만 현실에서는 정 반대로 쓰이고 있다. 원자력은 가공할 힘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핵에너지는 핵무기처럼 매우 파괴적인 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우리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줬던 원자력이라는 지킬 박사의 얼굴이 핵에너지라는 하이드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론 그 끔찍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쓰나미라면 눈에 보이기라도 하련만, 방사선은 색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과 도쿄전력이 제공하는 정보, 에다노 유키오 일본 관방장관의 발표가 없으면 일반 사람들은 하이드가 뒤에서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철저하기로 소문한 일본의 핵발전소(원전) 신화도 무너졌는데 한국정부는 친절하게도 연일 한국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나팔을 불어댄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안전하다는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 외벽에 왜 뜬금없이 페인트칠을 했을까? 핵폭발에 대한 불안을 페인트칠로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건지, 하는 일마다 의구심을 자아낸다. 아는가!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건 때 영국에서 7세 미만 어린이에게 우유가 방사능에 오염됐으니 먹이지 말라고 했다. 그걸 강에 버리려니까 독일에서 반대했다. 분말로 만들어 땅에 매립하려 했으나 그것도 환경단체가 토양 오염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 우유는 유제품으로 가공돼 한국 등에 수출됐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방사능 검역이 없었다. 그 외에도 스웨덴의 녹용, 터키의 건포도 등 방사능이 검출된 것들이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무지와 기만으로 세계를 농락했던 교회의 죄가 가볍지 않다면, 무한탐욕을 이윤과 효율로 포장해 파멸을 부추기는 한수원과 핵찬성론자들의 죄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제발, 더디 가더라도 사람 생각 하면서 가자! 목숨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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