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복희(언론인)
채복희(언론인)
땅끝에서 남창으로 가는 바닷가 국도, 한반도가 끝나는 혹은 시작되는 땅끝 도로는 국토순례지로 명가가 높다. 대양에서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 남창까지 가는 20여km 구간은 푸른 바다를 옆에 둔 한편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달마산과 함께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가에는 순례객들을 위한 응원판을 비롯해 각종 안내표지들이 간간히 눈에 띤다. 그 가운데 '경치 좋은 길 시작'이 새겨진 표지판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부터는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남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군데군데 경치 감상을 위해 세워진 정자도 순례객들을 손짓한다.

그런데 참 친절하기도 하지, 바닷가를 벗어나 마을로 접어든 도로변에는 '경치좋은 길 끝' 표지판이 버티고 서 있다. 이 지점부터는 경치가 어떠하길래 그런 알림판이 세워져 있을까.

그 '친절한 간판'을 막 지나면 넓은 밭자락이 펼쳐지는 마을이 곧장 나타난다. 마을 뒤로는 병풍처럼 둘러친 달마산이 한눈에 보이는데, 일단 경치 좋은 길은 끝이니까 별 기대할 만한 풍경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어느해 겨울도 다 기울고 봄의 기운이 넘치는 날, 아침 해를 받아 매화꽃 흰무더기가 아롱거리는데 저 멀리 달마산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춘삼월이 넘어 봄기운은 완연하건만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한 겨울이 지난 밤 달마산 위에 흰눈을 듬뿍 뿌리고 떠나는 아쉬움을 보였던 것이다.

능선위에 오르면 양옆으로 완도와 진도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달마산은 그 때문에 수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또한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멀리서 보면 바위병풍을 두른양 하며 천년사찰 미황사와 도솔암이 깃든 아름다운 산이다. 그 산이 푸른 빛 도는 마을의 너른 밭을 껴안고 눈으로 하얗게 뒤덮힌 광경이라니, 매년 한번 정도는 구경할 수 있는 장관일 것이다. 자연 경관도 그러려니와 국도변에 부드럽고도 낮게 웅크린 황토밭에는 철마다 배추와 마늘, 콩, 보리 농사로 녹색의, 혹은 황금빛 잎사귀들이 바람과 함께 일렁댄다. 그 사이로 난 좁은 농로들은 하늘로 향해 구부러지는 듯 사라진다.

바로 그 경치들이 '…끝' 이후 나타나는 풍경들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표지판을 세워두었을까. 경치좋은 길을 알려주겠다는 사명감이 넘쳐서, 혹은 정말로 너무 친절해서, 혹은 표지판을 세울 예산이 남아 돌아, 그것도 아니면 페인트가 남았는데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등등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어떻든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닫힌 사고'로부터 비롯되었지 않나 그것을 경계하고 싶어서이다. 무엇인가 '시작'이 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공식에 얽매여 있지나 않는지, 세상은 변하는데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사고는 여전하지 않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인터넷 세상을 다루고 그 새로운 세상이 얼마나 자산가치가 있는지, '페이스북'을 만든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다.

앞으로 인류는 지표면에 그어 놓은 국가 간 경계와 별도로 인터넷 사회(국가)들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러한 소셜 네트워크는 시작된 지 이미 오래다. 인터넷 상거래도 그 중 하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온갖 네트워크들이 그것이다.

그 세계는 결코 경직되고 닫힌 사고로는 만들 수 없다.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야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세계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왜 '경치좋은 길의 끝'을 명시해야만 했는지. 더더구나 자연경관을 비교하기란 인간의 눈으로 과연 가능한 것인지조차 의문일진데…. 표지판 하나로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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