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임기 막바지에 이른 공직자가 정책 집행에 균형감을 잃고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빗대어 '레임덕(lame duck)'이라 한다. '절뚝거리는 오리'라는 뜻이다. 점잖게 이르면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쯤 될 터이다. 

5년 단임제인 한국 대통령의 경우, 대체로 임기 반환점을 넘어설 즈음부터 레임덕에 빠지기 시작한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의 이명박 정권에도 어김없이 그 조짐이 보인다. 친숙한 고향 후배를 노골적으로 군부 요직에 앉히는 것이나, 이른바 '형님 예산', '영부인 예산' 등 권력자 일가의 사적 욕망이 충실히 반영된 예산안을 국회에서 폭력과 날치기로 처리토록 하는 것을 보면, 본격적인 레임덕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레임덕은 먼나라나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바로 해남 군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집권 후반기에 레임덕이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이제 겨우 집권 1년차인 해남 군수에게서 바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취임 6개월여 동안 해남군수는 유난히도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취임하자마자 군수실 이전과, 이른바 '호화아파트' 구입 문제로 말들이 많았다. 게다가 선거 때 운동원들이 금품을 살포한 사실과 관련된 혐의로 사법당국의 내사를 받기도 했다. 급기야는 지상파 방송 기자의 현장 취재활동에 개입하여 적절치 못한 언행을 함으로써 낯부끄러운 뉴스 화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해남 주민과 향우들도 죄 없이 낯을 붉혀야 했다. 

최근 '핵발전소건설저지 해남군민연합'이 출범한 데 이어, 핵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는 단체가 결성돼 해남이 시끄러워질 모양이다. 이쯤 되면 주민간의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불행한 사태에 이르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현직 군수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8만여 군민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여론이라는 그늘 뒤에 숨어 구경만 하고 있는 군수의 태도야말로 레임덕, 그 자체가 아닌가.

10여 년 전 핵 폐기장 부지 선정에 일치된 힘으로 맞서 싸웠던 해남 군민의 함성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물론 그때와 달리 지금은 상황이 변해서 핵발전소 유치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리다. 그것은 오직 핵발전소 부지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수원과, 오로지 돈만 되면 조상님 무덤도 팔아넘기려는 세력의 희망사항일 뿐, 건전한 주민의 진정한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해남 군수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한수원에 되돌려 보내기 바란다. 그 결단 하나로 해남 군수는 이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은 집권 초반기 레임덕에서 벗어나, 능력 있는 목민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해남군의회 의원들에게도 당부 드린다. 조만간 전국의 핵발전소 지역을 답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타산지석을 마련하기 위한 그 노고는 치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핵발전소 홍보관이나 둘러보고,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의 자화자찬이나 듣는 것으로 답사 일정을 채워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곳 주민의 구체적인 삶을 살펴보고, 핵발전소 유치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균형감을 가지고 들어봐야 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수온이 안 맞아 고기가 안 잡혀요. 굴, 소라는 종자도 없어져 버렸지라. 발전소에서 뜨거운 물을 쏟아버리면서 고기가 사라졌습니다…."

1989년 10월 19일자 '광주일보' 기사에 실린, 영광의 한 새우잡이 어부가 한 말이다. 또 당시 영광 수협 법성지소장은 "매년 고기값이 두 배 이상씩 뛰었음을 감안하면 실 어획량은 예전의 4분의 1도 안 된다."고도 했다. 더 끔찍한 목소리도 있다.

"영광원전의 온배수가 방류되는 인근 지역인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 일대에서 2년 전부터 기형동물들이 태어났고, 소나 개들의 사산·유산율이 급히 높아지는가 하면 연안 해역에서는 기형어들이 잡히고 어패류들이 멸종되거나 폐사하고 있어 방사능오염 관련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무등일보' 1990년 4월 25일자 기사에 실린 증언 내용이다. 동시에 핵발전소 유치 문제에 직면한 우리가 귀를 후비고 들어야 할 말들이다. 일찌감치 레임덕에 빠져버린 군수의 빈자리는 결국 현명한 의원들과 군민들이 함께 채워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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