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충진(동아인재대 교수)

배충진(동아인재대 교수)
배충진(동아인재대 교수)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는 한일강제 병합100년이 되는 해였다. 정신대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와 요구사항은 해결되지 않았고, 당사자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천황폐하 탄신축하 파티가 열렸단다. 유수의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참석을 했고, 요즘 마트에서 치킨까지 팔아가며 잘 나간다는 모그룹은 "천황폐하 탄생축하" 라고 쓴 대형화환까지 보내고 축하를 했다는 신문보도는 마음을 언짢고 불편하게 만든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의 길로 접어든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상대방과 자신을 잘 안다면 싸움에서 결코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는데 첫째로는 일본에 대한 몰이해가 그 요인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 기술이나 기계문명이 번성한 시기에도 강대국의 요건으로 중요한 것은 인구수인데 하물며 사람의 손에 의해 생산을 하던 시기에는 더더욱 사람의 수가 중요한 요소였음에 틀림없다. 임진왜란 당시의 인구만 비교해 보더라도 조선의 인구 400만에 대해 일본의 인구는 1200만이 넘었었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할 병력뿐만 아니라 내재된 상당한 국력의 차가 있었지만 당시의 주자학의 틀에 갇힌 조선사회는 일본을 야만이나 후진국 정도로 치부해 제대로 평가하고 대처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둘째 조선의 망국의 실제요인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 3정의 문란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으로 인한 국력의 쇠퇴와 통치 권력의 약화에 기인한다. 토지에 대한 징세인 전정은 토지 1결당 4두 내지 6두로 정해진 전세보다도 부가되는 세금이 훨씬 많았다. 부가세의 종류만 해도 수 십종류에 달했고 그것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비롯하여 경상 지방은 모두 땅을 빌려 농사짓고 있는 농민들의 부담이었으며 지방 아전들의 농간으로 빚어지는 전정의 폐해는 극에 달하였다. 군정은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정남(丁男)은 군역의 의무가 있었다. 영조 때 균역법의 실시로 군포 부담이 줄긴 하였으나, 양반층의 증가와 군역 부담에서 벗어나는 양민의 증가로 말미암아 가난한 농민에게만 부담이 집중되었고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부과하는 백골징포나 어린 아이에게 부과하는 황구첨정 등이 횡행하였다. 환곡은 국가의 비축미를 춘궁기에 백성에게 빌려주고 가을에 회수하는 제도이지만 여기에 비싼 이자를 붙이거나 환곡의 양을 속이고 불량곡식을 대여하여 가을에 거두어들일 때 골탕을 먹이는 등의 수법을 사용 해 농민 생활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관리들이 비일비재 했다. 이 같은 일들은 세도정치하의 공공연한 매관매직을 통한 국기의 문란과 더불어 세도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지방 토호 세력의 횡포 아래 빚어진 일이었다. 이런 삼정의 문란이 겹쳐 백성들의 부담은 높아져만 갔고 생활의 곤궁함은 결국은 민란의 커다란 원인이 되었고 조선왕조는 내리막길에 접어들게 되고 무능한 지배계층은 식민지배라는 치욕을 불러왔다.

우리나라는 수탈적인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와 고통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대표적인 국가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농업의 피폐, 부자감세와 국가부채 증가의 논란, 국가안보의 책임소재 논란과 전쟁일보직전의 남북대치 국면, 대형국책사업의 국가예산의 낭비문제, 사회계층간 양극화의 심화, 다른 분야에 비해 후진적인 정치구조와 이념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주위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작금의 처지는 시계바늘을 3정의 문란이 극심해 국가존립의 기로에 서 있었던 조선 말기로 되돌린 듯 하다.

한국전쟁 후 태어나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베이비붐세대가 대부분 은퇴하게 되는 2020년까지의 향후 10년간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기간이다. 향후 대한민국이 세계사 속의 주역으로 성장할 것인가, 종속된 분단국가로 남을 것 인가하는 국가와 민족의 상반된 미래가 다가오는 10년의 국가경영에 달려 있다. 허구한 날 얼토당토 않는 잃어버린 10년타령 일랑 그만두고 새로운 10년에 대한 비전과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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