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박남일(역사칼럼니스트)
'백설 공주'는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수록되어 200년 가까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읽혀온 독일의 설화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설 공주'는 어린이들에게 무난히 읽힐 수 있도록 상당히 다듬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원본 내용이 '스릴러'적 요소마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가지 표현만 바꾸면 '백설 공주'는 '여고괴담' 같은 납량특집 영화 소재로도 손색이 없다. 원본에 따르되 스릴러 버전으로 표현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눈처럼 흰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흑단(黑檀)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설 공주. 소복을 입고 달빛 아래 서면 영락없는 귀신의 캐릭터다. 그런 공주를 계모 왕비가 질투하는 데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질투에 눈이 멀어 히스테리가 솟구친 왕비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주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숲속에서 금을 캐며 사는 일곱 명의 난쟁이들이 공주를 극적으로 살려낸다.

번번이 살인 미수에 그친 왕비는 좀 더 세련되고 지능적인 방법을 생각해낸다.
바로 독이 든 사과를 먹이는 것이었다. 빛깔이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것을 탐하는 공주의 순진한 욕망을 이용한 살인 방법이라고나 할까. 마침내 공주는 왕비가 보낸 사과를 받는다. 교묘하게 독이 든 쪽이 유난히 붉어 보이는 사과다. 그 탐스러운 빛깔에 군침이 돈 공주는 사과 한입을 베어 물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 광경을 저주의 눈길로 노려보던 왕비는 괴기스런 웃음을 깔깔 터뜨리며 외친다.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고 흑단처럼 까만 백설 공주야! 이번엔 난쟁이들도 널 살려내진 못할 게다!"
지금 해남을 포함한 몇몇 지자체 주민 앞에도 이른바 '독이 든 사과'가 놓여 있다. 핵 발전 연료인 농축 우라늄은 치명적인 독이다. 그 독은 몇 푼의 보상금과 지원금으로 포장되어 있다. 게다가 원자력 홍보 전담 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써가며 독이 든 사과에 먹음직스러운 붉은 빛을 칠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또한 연간 20여억 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쓰며 원자력의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수원은 정작 지난해에 국민 혈세 5억 원 가량을 들여 실시한 '신규원전 입지확보 정책수립 종합용역'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원전 건설 후보지 10여 곳 선정 기준의 바탕이 된 용역임에도 말이다. 다만 한수원은 '자율유치 공모 방안' 등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내부 논의를 통해 유치 의사를 표명한 지자체에 유치요청서를 발송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의 위험성을 가리는 데는 엄청난 물량 광고를 퍼부으면서도 정작 그 건설 과정은 비밀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주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가 없고, 부안 핵폐기물처리장의 예처럼 지역 사회 갈등이 뻔히 예상됨에도 말이다.

한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한수원에서는 2012년 말까지 2~3곳의 신규 원전 '예정구역 고시'를 해야 한다. 일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각종 인허가 절차를 고려하면, 대략 내년 5월까지는 핵발전소 예정지를 확정해야 한다.

한수원 측에서는 "아직 지자체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말이다. 몇 달 뒤에는 어느 지역에선가 핵발전소 유치강행에 따라 갈등이 표출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불길한 일이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동화 속 백설 공주는 숲속에 나타난 왕자의 도움으로 되살아난다. 또 백설 공주 살해범인 왕비는 불에 달궈진 쇠 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 공주를 살려낼 왕자는 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백설 공주를 살해한 왕비에게 벌을 내릴 방법도 없다. 독이 든 사과는 애초에 먹지 않는 게 오로지 사는 길이다. 당근에 현혹되어 핵발전소를 유치했다가 우리는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이다. 그랬다간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대립에 시달린 주민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터져 나올 게 뻔하다.

"우린 독이 든 사과를 먹은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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