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기(해남지역자활센터 관장)

민인기(해남지역자활센터 관장)
민인기(해남지역자활센터 관장)
이제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 가을이 지나면 우리 주변에는 친척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경조사가 많아지게 된다. 청춘 남녀들의 결혼식이 빈번하고  환절기가 오면 애사일도 많아진다.

이때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거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면 그 경조사에 갈까 말까, 가거나 편부한다면 봉투에는 얼마를 넣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상대방이 우리집 경조사에 왔는지, 왔다면 얼마의 축조의금을 냈는지 빛바랜 문서를 찾아 확인도 한다.

옛날부터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으로 내려왔던 경조사 문화가 오늘날 복잡한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시간적 부담과 더불어 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온라인 취업포탈회사 '사람인'이 금년에 직장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경조사 문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의 59.4%가 경조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경조사비가 부담이 되어서가 1위였고 친분이 별로 없어도 참석해야 해서가 2위, 그 다음이 주말에 개인시간을 빼앗겨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의 결혼식 풍속을 보자. 청첩장을 최대한 많이 보내려고 한다.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보내게 되어 받은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하고 마구 보내다 보니 어떤 사람에게는 2, 3장의 청첩장이 배달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청첩장에 혼주의 은행 계좌번호가 적혀 있기도 한다. 그동안 부조한 것이 있으니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의미 일 것이다. 이쯤되면 그 청첩장은 '빚 상환 독촉 고지서'와 다를 바 없다. 

어느 결혼식장에는 축의금 접수원이 접수대에 앉아 봉투를 받자마자 번호를 매기고 돈을 꺼내 확인한 후 장부에 액수를 적는 모습이 축하객 눈앞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공과금을 낼 때의 절차가 연상되어 이때의 청첩장은 '공과금 납부 고지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식에 온 축하객들 중 결혼당사자 보다 부모의 축하객이 훨씬 많기도 하고 결혼식을 축하하려 온 건지 부모에게 '눈도장' 찍고 식사하러 온 건지 식장에는 들리지 않고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식장에는 축하객이 적어 썰렁하기도 하지만 식당은 붐빈다. 이렇듯 돈으로 계산하다 보니 한사람분의 축의금을 내고 축하객 부부 두사람이 함께 결혼식에 참석해서 식사하는 게 쉽지 않다.

결혼식에 온 축하객 수와 축의금 액수가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는 의식은 오늘의 형식적이고 금전 만능주의적인 사회풍조가 부지불식간에 미풍양속이었던 결혼문화를 좀먹어 온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돈봉투 중심의 경조사 문화는 결혼문화뿐 아니라 장례문화 등 경조사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심한 스트레스와 상당한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주는 짜증나는 경조사 봉투문화를 어찌할 것인가. 애경사시 가까운 친지와 친척들만 불러 기뻐할 일은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은 더불어 슬퍼하는 본래 그대로의 경조사문화로 바꿔가야 한다. 우선은 손해일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정신적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듯 싶은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들이 다같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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