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시민기자

고정희 시인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지난 5일 생가와 묘지 일원에서 개최됐다. '고정희기념사업회'(회장 이의영)가 매년 마련해 오고 있으며 올해는 제 19주기를 맞았다.

1948년,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고정희 시인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여러 측면에서 범접할 수 없을만치 또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을 비켜가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시인은 해남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난 뒤, 광주에 가서 작품활동(1975년)을 하는 한편 대표적 여성운동단체인 YWCA 간사로도 활동했다.

이후 시인은 서울로 옮겨가 살면서 시작활동과 동시에 기독교신문사 기자, 크리스챤아카데미 출판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편집주간, 여성문화운동그룹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등으로 활동했다.

첫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 1979) 출간으로부터 작고한 1991년까지 시인은 거의 매년간 꾸준히 한권씩의 시집을 세상에 내놨다. 이 다작의 작품들 중에서도 결코 시인은 '존재의 이유를 찾고 구원을 갈망'하는 팽팽한 시대정신을 잃지 않았다.

지금 시인의 생가에는 '고행, 청빈, 묵상'이라는 글이 걸려 있는데, 이는 생전에 시인의 좌우명이었다. 시인의 세계는 모태신앙으로부터 비롯된 기독교적 구원의 사상과 깊게 맞닿아 있다. 80년 광주를 지내며 시인은 '실락원기행', '이 시대의 아벨' 등의 시편들을 통해 치열하고 격정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빛을 갈구했다.

뒤로 그의 관심은 가난하고 억눌린 것들의 표상인 '여성'으로 확장되어, 남도의 전통문화인 씻김굿으로 대표되는 양식을 차용해 '초혼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등과 같은 주옥같은 시편들을 발표했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가히 우리 여성해방문학의 금자탑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이후 시인은 한층 정제된 언어로 마음의 고향 광주와 시대의 아픔을 잔잔하게 담아 '눈물꽃', '지리산의 봄', '광주의 눈물비' 등의 시집을 펴낸다. 이들 10권의 신작시집 외에 유고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비평사)와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가 있다.

1991년, 시인은 지리산 등반 중 실족사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지금 삼산면에 있는 생가에 그의 유품들이 보존되고 있으며 그의 시세계와 활동을 조명하는 다양한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고정희기념사업회'가 서울과 해남에서 활동 중이며, 11일부터 13일까지 제10회 고정희청소년문학상(여성신문사 주최) 문학기행이 해남 일원에서 열린다.

고정희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묘지에 모여 고인의 시를 낭송하고 있다.
고정희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묘지에 모여 고인의 시를 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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