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면 출신 임두성 국회의원 '소외계층 인권 복지에 앞장설터'

한센병 경험자로는 세계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화산면 출신 한나라당 임두성(59·비례대표 2번)의원의 소신은 소외계층의 인권과 복지에 힘을 쏟는 것이다.

현재 국회 복지위원회 소속의원으로 활동 중인 임 의원은 여야를 떠나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그들의 복지개선대책에 촌음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센인들의 단체인 사)한빛복지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임 의원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돼 국회에 입문했다. 생소한 인물이었던 임두성의원은 빈곤으로 인해 한센병(일명 나병)을 앓았던 소외계층과 함께한 인물이다.   

임 의원은 30여 년간, 한센인들의 빈곤퇴치 및 복지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투쟁했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소외자들의 처절한 생존권을 위해 본의 아니게 불미스러운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세상은 소외계층을 위해 할 일이 많은 그에게 넓은 관용을 베풀었다.

소년시절, 이 의원의 경력은 화려하지 못해 초라했다. 문명의 혜택이 뒤떨어진 작은 마을, 화산면 무학리에서 출생한 그는 근근이 화산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소년가장으로서, 홀로된 어머니와 함께 남의 소작농을 일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같이 학교를 졸업했던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 등·하교하는 모습이 보일라치면 지게를 벗어 던지고 논두렁 밑에 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래의 꿈을 꿀 수 없었던 지친 소년은 서울 행을 택했다. 그의 서울생활도 구차하긴 마찬가지였다. 구두닦이와 식당 허드렛일로 전전하던 그에게 한센병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질병이 덮쳐왔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주위의 시선을 피해가며 음지에서만 생활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마지막 안식처인 고향으로 귀향했지만, 한센병 보균자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밤중에 집에 귀가하고 새벽에 출타하는 생활을 반복해야만 했다.

제3종 국정전염병으로 정해진 한센병에 걸리면 전염된다는 사회의 잘못된 편견 때문에 그는 가족과 친구 곁에 갈 수가 없었다.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소록도뿐이었다.

못 먹고 못 배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개발에 힘쓴 결과 그는 20대 후반에 한센인 마을의 젊은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2003년 한센인들의 대표인 한빛복지협회의 수장으로 추대됐다.

임 의원은 한센병을 앓았던 당시의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한센병은 선진국에서는 발생하지도 않는, 못 먹고 못 사는 후진국들의 빈곤병이다고 밝힌 그는 한센병은 전염병이 아님을 재차 강조한다.

그의 아픔은 그에게 끝나지 않고 한센병을 앓은 병력 때문에 자식의 혼사까지도 망쳐버린, 자식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한센병의 역사를 정립하는 등 정면 돌파했다.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병은 발병하더라도, 치료제 '리팜피신' 4알만 투약하면 99.9% 전염성이 사라지고 치료를 계속하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하며 그는 그동안의 아픔을 삭인다. 

임 의원은 자신이 원했던 국회 상임위에 배정된 만큼 "소외계층의 인권과 복지에 더욱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다짐한다. 또한 "호남과는 정치적으로 이질감이 있는 한나라당에서, 미력하나마 고향 해남과 호남의 이익을 위해 발벗고 나서겠다"는 의지도 나타낸다.

임 의원은 해남출신이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해남에 빚이 많다고 밝힌 그는 향우회 활동에도 열성을 보인다.

임 의원은 현재 재경화산면향우회 운영위의장을 역임하고 고향발전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화산초·중동문회 체육대회와 매년 개최하는 8·15 화산면민 체육대회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단골 향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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