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록 (한국전쟁전후 해남군유족회 초대회장)

오길록
오길록
갈매기섬은 진도군 의신면 구자도리에 속하며 갈매기가 날고 있는 형상의 무인도이다. 지도상에는 갈명도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진도·완도·해남의 삼각점에 위치하고 있다. 바람과 파도, 조류가 빠르고 섬 전체가 바위로 둘려 쌓여 있어 배편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지리적으로 험난한 갈매기섬에 비극이 찾아온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 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애국지사들은 1946년 11월 1일 미곡강제공출반대와 친일경찰의 척결을 요구하는 추수봉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미군정과 친일경찰들은 1만3000여명의 봉기농민들 중 주동자 200여명을 구속하거나 총살해 버리고 나머지 400여명을 관제조직인 보도연맹에 입회시켜 관리와 감시,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12일부터 각 면단위 지서별로 보도연맹원들을 불법 연행해 구금한다. 이들에 대한 연행은 인민군이 해남에 진주하게 되면 이들에게 협조할 것이라는 예단에서이다. 각 지서에서는 인민군이 진주하기 13일 전인 7월 14일 밤 어선을 강제 동원, 해창과 어란항을 통해 보도연맹원 약 350명을 7월 15일 새벽 갈매기섬으로 끌고 간다.

10여명씩 한줄로 묶어 목선에 태우고 이불과 모포를 씌워 몽둥이로 내리쳐서 기절시키고는 이른 새벽 갈매기섬으로 끌고간 후 전원 총살해 버렸다. 확인사살까지 한 이들은 며칠 후 다시 갈매기섬으로 와서 보도연맹원들의 흰옷을 은폐하기 위해 방화까지 저지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학살현장에서 총을 빗맞아 생환한 고 박상배씨에 의해 1960년경 필자가 직접 청취한 증언이다.

한편 아들과 남편의 시신수습을 위해 갈매기섬에서 일부는 시신을 수습해 찾아갔지만 많은 유가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필자는 갈매기섬의 학살이 있은 지 14년 후인 1964년 봄 해남경찰서에 유골수습을 위해 갈매기섬 유족 방문신청을 했으나 빈번히 거절당했다.

당시 해남군 4-H 연합회장이었던 필자는 경찰서장과 심한 몸싸움까지 하면서 기어이 유골수습 허락을 받았고, 다른 유족들과 함께 어란항에 가서 쌀 두가마니를 건네고서야 겨우 어선을 빌려 탈 수 있었다.

한나절을 풍선배로 건너가서 도착한 갈매기섬은 섬전체의 바위가 매우 가파르고 무서운 기운이 느껴져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온 섬에 널려있는 유골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생존해온 고 박상배씨의 정확한 안내로 산이면 상공리와 금호리에서 붙잡혀간 10여명의 유골이 한데 나란히 누워있는 곳을 찾아낸 희생자들의 부모들은 유골의 형체를 전부 식별하였고 10구의 유골을 수습한 우리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각각 선산에 안장했다.

이렇게 350여명 중 개인적으로 수습한 유골은 50여구 정도뿐이고 아직도 300여구의 유골이 키가 넘게 자란 동백나무 뿌리와 흙 속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나 유가족들을 모시고 갈매기섬을 다녀왔다.

제17대 국회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안을 제정하였고 정부는 이 법의 공포와 시행령을 의결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구성됐다. 2006년 11월 30일까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의 신고를 받아 직권 조사중에 있다.

그 중 갈매기섬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나주경찰부대의 인민군복장 위장 학살사건, 해남군내의 여러 산골짜기에서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 등 300여명에 대해 1차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고 국가는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위령사업을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진실·화해 위원회는 국가 예산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 유해발굴팀에 의뢰해 9월 19일부터 갈매기섬에서 희생된 피학살자들에 대한 유골수습과 발굴작업을 착수하게 된다.

58년 전 죄없이 끌려와 차가운 무인도 갈매기섬에서 희생된 원혼들의 넋을 달래주고 그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일이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정말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 나라에서 조서 한 장 받지도 않고 기소와 구형, 그리고 사형선고(3심) 후 사형집행명령 없이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행위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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