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국 (시인·수필가)

천병국 (시인·수필가)
천병국 (시인·수필가)
독서진흥법과 그 시행령에 의하면 매년 9월은 '독서의 달'이다. 우리 군립도서관에서도 군민들의 독서의욕 증진과 독서의 생활화를 통한 건전한 가치관 확립을 취지로 여러 가지 도서관 행사가 추진 중이다. '한 권의 책에 꿈 가득, 한 줄의 글에 힘 가득'이란 주제 아래 읽은 책 바꿔보기, 기획도서 전시회, 독서통장 발급, 다독자 표창 등 도서인구의 저변확대에 진력하고 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 책을 안 읽어야 도리어 잘 살 수 있다는 물질의 야만성이 팽배한 세상, 파우스트의 서재에 몰래 침입하여 그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낸 메피스토펠레스의 권능이 미만(彌滿)한 세상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치관이 혼란한 사회일수록 독서는 필요하다.

독서의 목적은 한마디로 간접경험의 확충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직접경험처럼 확실한 지혜는 없다.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듣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지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직접경험의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바꿔 말하면 직접경험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롭다. 2천여년 전의 공자와도 대화할 수도 있고 아프리카 밀림속의 시바이처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간접경험이다.

사람은 영과 육이 조화된 동물이다. 우리의 육체는 음식물이란 영양소를 통하여 성장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책이라는 자양분을 통해서 성숙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하는 순간은 늘 현자와 함께 하고, 독서를 떠나면 우자와 교제하게 된다. 그러므로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기지 있는 사람을 만들며, 기록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는 책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한나라 고조는 무식했지만 장량이라는 현자가 곁에 있었고, 징키스칸의 곁에는 야율초재란 학자가 있었다. 세종 대왕은 눈병이 나도록 독서를 했기에 해동의 요ㆍ순이 되었다. 당나라 태종은 을야지람(乙夜之覽 - 밤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책을 읽음)이란 고사성어를 남겼다. 나폴레옹의 마상독서도 유명하지만 링컨의 전방위 독서도 유명하다.

그러면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을 것인가?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Fㆍ베이컨은 어떤 책은 맛을 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소수의 책은 잘 씹어서 삼킨다고 했다. 이것은 구독(口讀) 안독(眼讀) 심독(心讀)의 다른 표현인 것 같다. 책에 따라 가려서 읽는 적독과 첫 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읽은 통독이 있을 수 있으나 독서 방법의 전형은 다독과 정독이다.

다독은 박이부정(博而不精) 즉 널리 많이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고 세밀하고 깊지 못한 것이 단점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가 그 예이다. 정독은 정이불박(精而不博) 즉 정밀하게 깊이 읽은 것이 장점이고 널리 읽지 못한 것이 단점이다.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 - 공자가 주역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김)이 정독의 보기가 된다. 양주동은 다독과 정독의 장단점을 변증법으로 통일한 박이정(博而精)을 가장 이상적인 독서 방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책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양서와 악서를 구별해서 양서를 읽어야 하며 자기의 소질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야 한다. 또 고전은 마음 놓고 읽어도 좋다. 왜냐하면 고전은 항구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 독서인들에 한 권의 양서를 권하고 싶다. '소학'이다. 이 책은 송나라 유자징이라는 사람이 주자의 가르침에 따라 편찬한 초학자의 교양서요. 자녀 교육의 지침이 될 고전이다. 고산이나 우암 그리고 다산 등이 수불석권(手不釋卷 -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한 책이다.
책을 읽자, 책속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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