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 단련된 힘찬 조선의 여인상

그녀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그녀는 지금 그림을 관람하는 우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관람자의 시선과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작품 중 인물의 뒷모습을 남긴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윤용은 자신의 자화상을 정면 상으로 표현했던 공재 윤두서의 손자입니다. 정면상으로 처리한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구도면에 있어 우리나라 인물화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깁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의 주인공의 시선과 관람자가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는 윤용의 나물캐는 여인도 우리나라 회화사상 획기적이지요.

그림은 평면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세계입니다. 많은 화가들은 그림이 가지고 있는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해 원근법을 적용, 그림에 입체감과 깊이 감을 부여하며 3차원의 세계를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이 작품은 여인 외에 배경 산수가 없습니다. 그림의 깊이를 주는 배경이 없는데도 이 여인의 뒷모습과 시선 때문에 이 작품은 무한한 깊이 감을 선사합니다. 여인의 시선을 통해 그림을 관람하는 우리들은 무의식중에 무한한 원근법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봄날입니다. 따뜻한 봄기운을 맞으며 여인이 들녘으로 나왔습니다. 모양새를 보니 나이어린 새댁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에서는 다소곳한 새댁의 이미지는 없습니다. 악착같이 삶을 일구는 시골 여인의 이미지만이 인상 깊게 남습니다.   

낫을 들고 있는 여인의 손에 힘이 묻어납니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다리도 건강미가  넘칩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일하기 편하게 치마를 걷어 올려 질끈 동여맨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삶에 애착이 강한 한 여인을 대하게 됩니다.

윤용은 걷어 올린 여인의 다리와 팔에 담채를 가미했습니다. 그 작은 표현이 여인을 구리 빛 건강미로 태어나게 합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었던 조선시대, 문 밖 출입이 어려웠던 양반댁 여인들은 장옥으로 온몸을 꼭꼭 가린 채 외출을 했습니다. 우리의 뇌리에 깊게 박힌 조선의 여인상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다소곳하게 행동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야 하는 들녘의 여인들에게는 노동이 전부였겠지요. 한창때의 사내처럼 장단지를 내놓고 당당하게 서 있는 여인, 삶이 고달팠겠지요.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건강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가지고 굳건히 자연을 대하는 이 여인에게서 조선의 힘찬 여인상을 보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골 아낙네의 모습을 과감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윤용은 이 그림을 통해 노동하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름과 낙관을 여인의 눈높이 아래로 처리해 이 여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이 작품은 공재 윤두서의 나물캐는 여인에게서 느꼈던 풍속화의 느낌이 물씬 풍겨납니다.  그러나 공재의 작품과 달리 주변 배경을 생략하고 여인의 모습을 더욱 다부지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공재가 활동했던 시대보다 세상의 문이 더 넓게 열려있었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어 가능했겠지요.

윤용은 조선후기 화가로 호가 청고입니다. 공재 윤두서의 손자이자 윤덕희의 둘째 아들로 집안의 화풍을 충실히 계승한 인물이지요.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가 공재 윤두서가 일궜던 남종화풍과 풍속화 그림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용의 나물캐는 여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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