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해남요가원 부원장)

엄마가 되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남들이 노산이라 이름 하는 나이지만 난 집에서 아일 낳았다.

작년 여름, 신랑과 긴 토론 하에 아이 갖기 작전(?)돌입, 곧바로 아이가 들어섰다. 입덧도 가볍게 지나가고 차츰 배가 불러오자 출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정출산,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그랬듯 집에서 애를 낳고 싶었고 그 생각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현대인의 출산문화는 산부인과에서 의사의 지시 하에 마치 환자처럼, 관장을 하고 링거를 꽂고 수술대위에 묶여 수술집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히 폭력적인 그것이다.
그것도 자연분만이면 다행이지만 제왕절개율이 세계1위라지 않는가.

이러한 출산문화가 당연시 되고 있는 현대여성들과 내 이웃에 새로운, 아니 잊혀진 우리의 아름다운 출산문화를 다시 일깨우고 싶은 맘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산파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길 한달여, 온라인상에서 경기도에 계시는 조산사님을 알게 됐고 TV에 방영된 그분의 가정 분만기와 '울지 않는 아이' 동영상을 신랑과 감격에 겨워 볼 수 있었다. 하루에 한명의 아일 받을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이곳 해남까지 와 주시기로 약조가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6월 3일 새벽에 이슬이 비추었고 다음날 밤 미세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진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가에게도 힘을 내라 격려하였다.
아침이 되어서야 신랑을 깨우고 조산사님께도 연락을 취하니 진통시간을 체크하며 내려오셨고 아직 3cm정도 열린 자궁문을 확인하곤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문이 다 열렸음을 확인하고 신랑이 뒤에서 내 상체를 받쳐주는 자세로 앉아 조산사님의 지시에 맞춰 안간힘을 주기 30여분, 조산사님의 손이 번쩍 들어올려지더니 작은 아이가 내 가슴에 얹혀졌고 난 그때서야 정신이 들어 울지 않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깨끗한 피부의 아일 들여다보며 감격해 했다.

탯줄의 혈맥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신랑이 탯줄을 끊고, 준비해 두었던 아가맞이 편지글을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로 잔잔하게 읽어 내려가는데 그 순간은 마치 자궁안 처럼 고요와 평화 그 자체였다.
곧이어 나온 태반은 미리 준비해둔 작은 항아리에 담아 다음날 아기 탄생수로 심어놓은 은행나무 밑에 묻기로 하였다.

조산사님이 아가를 옆으로 뉘어 젖을 물리니 노오란 초유가 나오고 아가는 힘껏 젖을 빨며 첫 세상맞이를 시작하였다.
100분 나체요법을 하였고 곧이어 엄마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이는 며칠동안 적은양의 초유만 먹고 놀랄만큼 많은 양의 검은 태변을 본 후 황금빛 똥을 누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였다.

낮엔 잘 웃고 놀며 밤엔 잘 자는 온순한 아이로 자라면서 가정분만의 자연스러움과 평화로움이 아이의 순한 성격과 강한 생명력에 영향을 미쳤음을 실감하고 있다.

나와 신랑, 그리고 내 아이가 주체가 되어 해낸 이 가정분만이 특별한 것이 아닌,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고 용기를 낸다면 가능한 또 하나의 출산문화이자 온 가족의 축제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끝으로 이 놀라운 삶의 비밀을 경험하며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 우리의 아이들을 낳고 길러냈음에 존경의 갈채를 한없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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