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의병투쟁, 30년대 호남최대 항일조직 거점
황두일 의병장, 김홍배도 이 마을 출신
'동광학원' 일장기 걸어놓고 독립사상 가르쳐

 

 북평 이진마을을 항일투쟁마을로 상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북평 이진마을은 1909년 한말 마지막 의병투쟁과 1932년 9개 시군에 걸쳐 조직된 항일운동 단체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의 중심마을이었다.
 또 한말 마지막 의병투쟁을 이끈 황두일 대장과 전남운동협의회를 실질적으로 조직한 김홍배를 배출한 마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이진마을에는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가며 민족의식을 키웠던 사설학원인 동광학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평면 일대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가르쳤던 동광학원은 밖에는 일장기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항일운동을 지도했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아쉽게도 이 건물은 몇 해 전 마을회관을 신축하면서 헐리고 말았다.   <관련기사  3·6면>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이진마을은 정유재란 때 울돌목으로 향하던 이순신장군이 심한 토사증이 나 이곳에 머물면서 병을 완치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병을 완치한 것과 관련해 이진마을 노인들은 이진마을이 없었다면 명량해전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란 말로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진마을의 항일운동 전적은 해남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일로 이번 기회에 항일운동 마을로 상징화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마지막 의병 투쟁 장소였고 1930년대 전남운동협의회 조직건설의 모의 장소였던 대흥사 심적암을 복원하려는 운동이 일고 있어 이 기회에 이진마을도 항일운동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진마을에 사는 강경식(83)씨는 "어렸을 때부터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진은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며 "후손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줄 항일마을로 이진을 상징화 시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심적암 의병투쟁 복원사업을 맡고 있는 오길록씨도 "이진마을은 해남지역 근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한 마을이 오랫동안 항일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 의미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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