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해남을 노래하다

본지는 800호 기념으로 해남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9명의 시인들을 소개한다. 시인의 고향, 해남 시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월 1회 총 10회에 걸쳐 박남일작가가 연재한다.

 

 

박남일작가

· 황산면 출생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
· 제3회 창작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1992년)
· 저서 KBS 방영 <역사의 라이벌>(전 4권)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풀이사전
· 청소년을 위한 혁명의 세계사 등

 


■연재순서
1. 시인, 해남을 노래하다.
2. 조선 초기 호남 시학의 스승 임억령과 백광훈
3. 불운한 정치가 조선의 으뜸시인 윤선도
4. 남도의 한을 노래한 토속시인 이동주
5. 언어예술의 극치를 보여준 '풀잎' 시인 박성룡
6. 해남이 낳은 위대한 혁명시인 김남주
7. 남도가락으로 민중의 눈물 닦은 여성시인 고정희
8. 생명을 온몸으로 사랑한 민족시인 김준태
9. 독특한 감각으로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 황지우
10. 해남, 시인을 노래하다

 

시인, 해남을 노래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아는가. 그 노래를 부른 대중가수 안치환. 그가 2000년 4월에 독특한 음반 하나를 내놓았다. 음반번호가 '6.5집'이다. 예사롭지 않다. 음반에는 '똥파리와 인간'. '돌멩이 하나',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등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노래 12곡이 실려 있다.
 또 마지막 곡은 자작시를 낭송하는 한 시인의 떨리는 육성으로 매조지 되어 있다.
 그렇다. 안치환 6.5집이 범상치 않은 것은, 노랫말 모두가 김남주(1945-1994) 시인이 생전에 피를 토하듯 쏟아놓은 시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 음반은 섬광처럼 번쩍이는 삶을 살다간 김남주 시인에게, 가수 안치환이 바친, 한 마디로 헌정(獻呈)음반이다. 작곡가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해 제3교향곡 영웅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문학에 어섯눈이라도 뜬 이라면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김남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이름은 더욱 빛이 난다. 그가 쓴 시들은 노래가 되어 방방곡곡 거리에서, 자동차 안에서 전음을 타고 흘러나온다. 구석진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움켜쥔 어느 중년 사내의 목에서도 더러 울려 나온다.
 시인은 갔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오늘도 우리네 무기력한 일상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수놓은 두 시인 김남주와 고정희

 

 해남 삼산면 봉학리가 고향인 김남주 시인은 80년대 이후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혁명시인으로 우뚝 섰다. 그는 시인이기 전에 혁명 전사였다. 7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 유신독재에 맞서고, 80년대에는 강산이 바뀔 만큼 긴 세월을 옥살이하면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 등의 시를 써서 현실에 저항했다. 그리고 출소 후, 감옥에서 얻은 지병 췌장암으로 94년 2월 13일에 타계했다.
 이처럼 연재 첫머리를 온통 김남주의 이름으로 장식하는 것은, 그의 존재가 한국 현대사에 끼친 영향이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까닭이다.
 또한 현대사의 독보적인 여성 시인 고(故) 고정희(1948-1991)와 더불어 한국 시단에 일대 충격을 가한, 해남 출신의 걸출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2003년 8월에 방영된 KBS '인물현대사'에서는 '노래하는 전사 김남주'라는 제목으로 시인의 불꽃같은 삶이 소개된 바 있다.
 또 13주기 기일을 맞은 지난 2월 13일, 인터넷 포탈 '네이버'에서는 김남주 시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를 '오늘의 책'으로 선정하여, 시집과 시인의 삶에 대해서 방대한 분량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해남은 시인의 고향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김남주다. 하지만 고정희 시인 또한 김남주와 더불어 해남을 상징하는 양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김남주 시인의 고향 마을 봉학리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1975년 <현대시학>에 등단하여, 광주의 '목요회'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인으로서 강한 의지와 함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한 고정희는 민족진영 문인들의 최대조직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정희 시인의 위대한 자취는 한국여성운동사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등을 맡아 헌신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이 땅의 여성들에게 희망을 일깨웠던 것이다.
 하지만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에 발을 헛디뎌 마흔 셋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공교롭게도 고정희는 김남주보다 3년 늦게 태어나, 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남주와 고정희 뒤로도 한국 문단과 해남을 빛낸 걸출한 시인들은 줄을 잇는다. 김남주와 고정희는 해남 시인의 계보를 과거와 현재로 나누는 대마루다.
 그 과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빼어난 서정시를 남긴 박성룡과 이동주가 있고, 더 거슬러 조선시대에 이르면 조선의 대표시인 윤선도와, 호남 시학의 스승 임억령, 그리고 삼당시인(三唐詩人) 백광훈이 있다. 그리고 김남주와 고정희 이후 투철한 시대정신으로 해남 시맥을 이어가는 김준태 시인과 황지우 시인이 있다.

 

해남은 빼어난 시인들의 고향

 

 먼저 평생을 '풀잎'과 풀벌레에 천착한 박성룡(1932-2002) 시인은 해남 화원면 마산리가 고향이다.
 1956년 <문학예술>지로 등단하였고, 사상계,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의 언론사에 재직하는 한편으로 주옥같은 시편들을 남겼다. 지난 6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책에도 실린 그의 시 <풀잎>은 언어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성룡 시인보다 조금 앞서 태어난 해남의 또 다른 서정시인 이동주(1920-1979)는 현산면 읍호리가 고향이다.
 1950년에 '문예(文藝)'지에 <혼야(婚夜)>' 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해남의 전통적인 정서를 섬세한 리듬으로 노래했다.
 그의 수작 <강강술래> 또한 지난날 국어책에 실린 바 있는데, 우수영 달빛 아래 펼쳐지는 부녀자들의 강강술래 광경은 언어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해남의 시맥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고산 윤선도(1587-1671)에서 정점을 이룬다.
 윤선도는 시인이기 이전에 학자였고, 정치가였다.
 윤선도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일찍이 조정에 나갔으나 당쟁의 여파로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내게 된다. 그 유배지의 고독함이 가득 배인 윤선도의 시작품은 송강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문학의 쌍벽을 이루게 된다.
 윤선도에서 더 거슬러 조선 전기에 접어들면 우리는 옥봉 백광훈과 석천 임억령 시인을 마주하게 된다.
 해남읍 관동리 태생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은 사간원 대사헌으로 조정에 나가 강력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쳐 낙향한 시인이었다.
 노년에 그는 담양 식영정에서 송강 정철 등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함으로써 조선 시문학의 기둥을 세웠다.
 임억령의 다음 세대를 이은 옥봉(玉峰) 백광훈(1537-1592)은 본디 장흥 안량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해남 옥천 대산리로 옮겨와 옥당서당에서 공부했다.
 옥봉은 최경창,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명성을 떨치며 한문학사의 정상을 장식했다.
 한편, 김남주 시인과 동시대 시인으로, 지금의 해남 시맥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해남 화산이 고향인 김준태(1948~)를 들 수 있다.
 '오월 시인', 또는 '민족시인'이라는 꾸밈말이 늘 따라붙는 김준태 시인은 해남 농민의 후예답게 그는 남도의 민중정서를 완성도 높게 노래하며 암울한 80년대를 저항했다.
 더불어 해남 북평면 배다리에서 태어나 광주서중, 일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나온 엘리트 시인 황지우도 유신정권에 항거하다 구속되고, 제적과 재입학을 반복하는 등 시대정신에 투철한 시인이다.
 
시인은 꽃보다 아름다워 

 
 조선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과 문인이 해남에서 나왔다.
 하지만 정작 해남이 시의 고향인 것은 그간 배출된 시인의 숫자가 아니라,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드넓은 전원 풍광과 땅끝이라는 공간적 절박함이 어우러져서 독특한 정서와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저 유명한 김지하 시인과 소설가 황석영이 한동안 해남에 붙박아 머무르며 창작의 땀방울을 뿌린 바 있다. 더불어 이즈막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고은 시인도 해남을 노래하였다.
 '땅끝에 / 왔습니다. / 살아온 날들도 / 함께 왔습니다. / 저녁 / 파도 소리에 / 동백꽃 집니다.'라고.
 또 김지하 시인은 <애린>이라는 시에서 땅끝에 선 절박한 심정을 시로 읊었다.
 '땅 끝에 서서 /  더는 갈 곳이 없는 땅 끝에 서서 /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 새 되어 날아가거나  /고기되어 숨거나... / 혼자 서서 부르는, /  불러 /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 저 바다만큼 / 저 하늘만큼 열리다 /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 한 오리 햇빛 / 애린 / 나.'
 해남은 어느 고장에서도 흉내 낼 수 없고, 억지로 창출할 수 없는 독특한 문화적 자양분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도 군청사 마당이나 문화예술회관 어디를 둘러보아도 해남 시인을 기리는 작은 기념물 하나 보이지 않는다.
 광주 비엔날레 공원에도 세워진 김남주의 시비 하나쯤 군청사 앞마당에 세워두면 좋을 터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오며 가며 읽다가 자연스레 몇 구절 줄줄 욀 수 있게 된다면, 주민들의 가슴 속에 자부심이 절로 자라나지 않을까.
 밥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웬 시 타령이냐고 타박하지 말라. 시가 곧 밥이다. 시는 또한 양심이고 믿음이다. 하루 세 끼 밥이 육신에 생명을 불어넣듯, 시는 우리 영혼을 살아있게 한다.
 비록 현실이 암담할지라도 시인의 목소리리가 울려 퍼지는 사회에는 양심과 믿음이 살아있다. 그래서 희망도 있다. 시인이 죽은 사회는 희망마저 죽은 사회다.
 
 붉은황토 위로 첫봄이 오다
 

 또 봄이 온다. 땅끝에 오는 봄은 늘 첫봄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고향 해남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라 '첫땅'이다.
 곳곳에 드러난 붉은 황토와, 이불처럼 언덕을 덮은 매화꽃, 그리고 일찍이 박성룡 시인이 노래한 파릇한 풀잎들로 첫땅의 봄은 늘 선명한 원색이다. 그래서 고정희 시인은 첫땅의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땅의 사람들-봄비' 중에서)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닐 터이다.
 진정으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시대정신에 투철한 시인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해남이 낳은 아름다운 시인 아홉 명의 삶과 작품 세계를 구경하게 될 것이다.
 그간 묻혀 있던 해남 시인들 흔적을 발굴시인의 삶과 작품을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함께 통합된 체계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여러 시인과 관련된 유적지, 유가족 등에 대한 취재담과, 생존한 시인의 경우 직접 면담한 내용을 곁들여, 생생한 사진과 함께 지금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로 엮고자 한다.
 그리하여 붉은 황토밭 고구마와 한겨울 배추잎에 어우러진 시의 향기가 우리 고장에 유유히 흘렀으면 좋겠다.
 더불어 첫땅 해남의 문화적 이미지를 한 단계 높여 답사여행 일번지의 면모를 지키고 가꾸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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