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충 진 (동아인재대 교수)

 

 지난주 출근길에 우리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한분을 면소재지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다. 가는 차 안에서 쥐가 냉장고를 다 갉아 버려 못쓰게 되었노라고 하시기에 일간 시간을 내서 찾아뵙겠노라고 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에까지 찾아오셨다. 할머니 집엘 가보니 냉장고의 냉동실 고무페킹과 안의 플라스틱을 쥐가 갉아 놓아 냉기가 새고 있어서 우선은 스펀지로 채우고 테이프를 잘 붙여서 응급조치를 해놓고 다음에 조그만 냉장고라도 구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분처럼 70~80세가 넘어 귀도 어둡고 몸이 불편해서 전반적으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녀들이 멀리 떨어져 살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노인 분들이 우리 주위엔 많이 계신다. 오히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거에 비해 복지가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노년의 빈곤, 질병, 고독, 역할상실이라는 4苦에 노출된 노인들이 지역사회에는 대부분의 노년기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한 두분 정도라면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지만 수십분을 넘어선다면 지역사회내의 사용가능한 자원과 욕구의 우선순위를 파악해 효율성 있게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공공과 민간의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조사, 상담을 통한 사례관리와 소비자 욕구지향의 사회복지서비스가 절실히 요구되어 지고 있다.
 농촌지역은 대체적으로 도시에 비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도시에 비해서 사회복지 자원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농촌지역이 보유한 복지자원 역시 읍·면지역에 편중되는 자원의 불균형의 문제가 대두되어 특히 욕구가 많은 마을단위 주민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는 매우 부족하다. 다시 말해 농촌이 도시에 비해 소외되는 현상이 똑같이 농촌지역내의 읍·면·리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악성 프랙털(fractal)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이 쇠락하고 복지체계가 열악한 배경으로는 농업은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 아닌 비 임금 노동력에 기초한 소규모 가족농에 의한 노동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주곡생산 중심으로 이윤이 남지 않아도 생산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가족농의 특성상 농촌에서는 자본의 축적이 어려웠다는 점이고 따라서 자본 대 노동이라는 구조 하에서 성립되어진 복지제도에서 농촌지역은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농민들도 대기업 종업원처럼 대규모 농업주식회사에 고용되어서 월급을 받으며 생산 활동을 하고 노동조건과 임금인상과 같은 권리를 요구 하고 이의 쟁취를 위해서 단결권을 행사했다면 복지혜택이 많이 더 주어졌겠지만 농사란 대대로 자기의 책임 하에서 영위해온 산업이라는 점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농촌은 국가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하여 그 기능이 작동하지 못할 때 도시에서 생활하는 가족원, 즉 불안전한 노동인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회보장적 기능을 담당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을 통해 자원이 소진된 농촌은 급격한 고령화와 농업의 쇠퇴 속에서 WTO체제, 농업개방의 국면에 들어서 개별농가의 재생산 구조가 붕괴되고 이제는 축소재생산 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오늘날 농촌의 현실이다.
 정부는 복지전달체계의 개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보건복지사무소 → 사회복지사무소 설치 등의 수많은 정책적 혼선 속에서 최근 2006년 행정자치부에서는 '읍·면·동의 행정기능을 축소하고 사회복지 기능을 강화'하는 취지의 행정조직개편 방향을 제시하였고 우리 해남군에서도 금번 조직개편에 반영되었다. 군에는 사회복지과를 개편하여 주민생활지원과와 가족복지과를 신설하고 읍·면에는 주민생활지원담당이 설치되었다. 이는 주민들이 읍·면사무소를 방문하여 종합적인 상담과 정보제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읍·면사무소에서는 담당인력을 확충하여 현장방문과 사례관리와 같은 주민욕구 밀착형서비스, 찾아가는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첫째,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주민생활권 중심으로 복지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개편이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과 교통·도로망 발달이라는 환경변화를 감안한 행정조직 유연성 확보와 권한위임을 통해 현장중심의 활동의 강화가 필요하다. 지역주민들이 단순히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주민을 교육하고 조직화해나가는 것이 농촌의 복지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군이나 면에서는 이러한 기반조성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둘째, 전문 인력의 확보와 전문성의 제고가 필요하다. 현장조사와 상담, 사례관리와 같은 업무는 사회복지에 관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전문 인력의 현장전진배치와 군과 읍면간, 부서간의 업무조정을 통해 중복방지,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주민생활지원과와 가족복지과 그리고 읍면 간의 원활한 업무협조와 조정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업무의 특성상 부서 간 업무가 정확히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정책수행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부족한 자원의 개발과 확보, 주민참여의 복지를 위해서는 민간기관과의 협력체계와 네트워크 구성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를 위해서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활동이 활성화 되어 지역사회 복지활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중 단체·기관 위임사무를 제외하고 지자체가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고유 업무는 주민의 복리증진과 농림·상공업의 산업진흥, 교육·체육·문화·예술의 진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번 복지조직개편을 통해서 자치단체의 제일의 사명인 주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보다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조직개편 후 관계부서 간 그리고 민간과 공공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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