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보 모이는 '해남 정치1번지'

군민의 쉼터이자 여론 소통의 장

한일전 축구 열리는 날이면 TV소극장
버스 기다리는 손님 새벽부터 문전성시
미모 지식 겸비한 한복입은 마담 인기

 

 길다방에서 맞선을 보면 맺어지는 확률이 높다는 소문 때문에 주말이면 대여섯 쌍의 남녀들이 선을 보았고 한일 축구경기나 권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이 앉아 TV를 관람했던 곳.
 40여 년 전 길다방의 모습이다.
 1960년대 길다방은 해남의 소극장이자 군민들의 쉼터였고 지역사회 소통의 장소였다. 해남갑부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던 TV가 있었기에 길다방은 소극장 역할을 했고 한일간의 경기라도 열리는 날에는 읍민은 물론이고 면민들까지 생업을 뒤로한 채 이곳으로 몰려와 TV를 볼 정도였다.
 이때는 손님이 워낙 많이 몰려왔기에 테이블에 점잖게 찻잔 놓고 차를 마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다방 문을 들어섬과 동시에 찻값을 선불로 내고 사람들 틈새로 겨우 끼어들어가 차를 마시며 TV를 봐야했다.
 당시 해남의 여러 다방 중 길다방이 가장 번성했고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이유는 이곳이 버스터미널인 금성여객(현 광주은행 자리)과 고속버스터미널, 경찰서와 교육청, 군청 등을 끼고 있어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했기 때문이다.
 버스로 광주까지 4시간, 서울까지 11시간이 소요됐던 당시에는 일단 서울과 광주에서 해남으로 내려오거나 면지역 사람들이 서울 등지로 가려면 해남 버스터미널(금성여객)에서 내려 차를 타야 했다.
 특히 진도 사람들은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후 광주나 서울로 가는 차를 타야했고 진도로 가는 경우도 해남버스터미널에서 황산 방면의 차를 타야했다. 진도대교가 들어서기 이전이라 이들은 황산 삼지원에서 배를 타고 해남과 진도를 왕래했다.
 송지 산정으로 가는 차가 하루에 2회, 진도는 3회 정도밖에 없던 시절이라 대도시로 올라가거나 내려올 경우 다음 차 시간을 맞춘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따라서 이들은 길다방에 앉아 다음 차를 기다려야했는데 당시는 서울로 돈 벌러 간 사람들이 워낙 많던 시절이라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로 길다방은 항상 새벽부터 사람들이 붐볐다.
 김강수씨(65)는 새벽녘에 운동을 하고 오면 다방 문 앞에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기다란 줄이 서 있었고 다방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이들은 쌍화탕과 삶은 계란 등으로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며 4~5시간 정도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버스시간을 기다렸다고 회고했다.
 또 당시는 다방에서도 위스키와 맥주, 갈비, 삶은 달걀을 팔던 시절이라 서민들은 주로 차와 계란을 사 먹었다. 서민들의 기다림의 장소, 터미널이 옆에 있어 서민들의 맞선 장소이기도 했던 길다방은 해남의 관료들이 주로 이용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일단 경찰서와 교육청, 군청 등 해남의 중요 기관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보니 이곳은 주요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출입처이기도 했다.
 경찰서 정보2계장이 출근하기 전에 길다방에 들려 마담에게 누가누가 왔고 무슨 얘기들이 오갔는지 물어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을 정도로 이곳은 해남의 정치 1번지, 여론 1번지이기도 했다.
 해남의 여론 흐름은 길다방을 가야만이 알 수 있고 세상의 새로운 소식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당시에는 해남지역의 통설이었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 여론을 수렴해가고 또 여론을 흘려놓고 갔던 곳, 각종 언론매체의 미발달로 세상과 소통되지 않던 당시 이곳은 세상과의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다.
 해남의 주요 기관장들이 출입했던 곳이라 다방 마담은 미모 뿐 아니라 지식도 두루 겸비해야 했다.
 당시  일자리가 워낙 귀하던 시절이라 다방에서 일하려고 했던 여성들이 많았는데 마담의 경우는 대기업 면접처럼 엄격한 심사를 거쳐 뽑았다. 마담은 버선을 신고 한복을 입고 일을 했는데 미모뿐 아니라 지식까지 겸비해 그야말로 다방의 꽃이었다.
 지금은 겨우 현상유지나 하지만 당시는 장사가 워낙 잘돼 영업이 끝난 후 피곤해 돈을 세지 못하고 자루에 담아 다음날 은행에 가져다줬을 정도였다는 길다방은 고급 손님들에게 맥주와 위스키를 판매했다.
 맥주도 워낙 귀한 시절이라 맥주 한번 마시면 3일 동안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했을 정도이고 커피는 맛 보다는 멋으로, 위스키는 진짜라기보다는 소주에 커피를 섞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커피 값 80원(현재 2000원), 아가씨 월급은 1만5000원(현재 250만원 이상)이던 시절, 읍내 다방만도 40개 이상(현재 8개)이나 됐다.
 길다방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지금은 다방문화를 접했던 장년 이상의 손님 한 두 사람들만 찾아와 담소를 나누는 길다방, 그러나 길다방에 대한 추억은 당시 읍내를 출입했던 모든 지역민들에게는 고이 간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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