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헌납 해남읍교회 설립

일생 동안 그리스도 전파에 온 힘

 

 해남교회 교인이라면 임봉록·이복덕 부부를 기억한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남외리의 초가 8칸과 대지 150평, 밭 12두락, 결혼금반지 등 전 재산을 교회에 헌납해 해남읍교회의 기초를 닦았고 해남읍교회 부흥의 기초도 닦았기 때문이다.
 당시 해남읍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이들 부부가 헌납한 재산이 너무 많아 순회선교사였던 맹현리 선교사가 주변의 가난한 교회에 나눠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침으로서 해남읍교회는 본격적으로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봉록 집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과정에 대해 '해남읍교회의 역사'에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당시 23세였던 임 집사는 해남군청에서 모아둔 세금을 광주도청까지 지게로 운반하는 일을 맡았는데 어느 날 나주를 지나던 중 들녘에서 김을 매는 아낙네들이 부르는 찬송가 를 듣게 됐다고 한다.
 처음 들어본 찬송가이지만 그로인해 마음의 문이 열린 임 집사는 그 뒤로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다.
 자신들이 살던 집을 교회에 헌납한 후 잠시 동안 남의 집 셋방살이를 했다는 이들 부부의 깊은 신앙심은 호남전역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따라서 국내 및 외국 선교사들이 해남에 올 때는 반드시 이들 부부의 집에서 묵고 갔다고 하며 그 결과 해남에 온 타 지역 신앙인들 중 임 집사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들이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임봉록씨의 아들인 임육만 장로(해남읍교회)는 서울 등지에서 선교사들이 오면 하루 전날 양잿물을 풀어 집안 대청소를 했고 자신의 집으로 온 외국인 선교사들은 신발에 천을 싼 채 방안에 들어왔다고 기억했다.
 경제 수완이 좋았던 임봉록 집사는 혼자 일본어를 터득해 일본어 통역 일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토지측량 때 통역을 했던 임 집사는 그곳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각종 선교활동을 지원하고 당시 너무도 열악했던 목회자 사례비와 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에도 보탰다고 한다.
 부인 이복덕 집사는 해남읍뿐 아니라 각 면을 돌며 왕성한 전도활동을 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복덕씨는 예수의 성령을 받았던 인연으로 각 면지역 교인들이 서로 다퉈가며 초청하려 했고 그래서 그의 집은 면에서 온 교인들로 항상 북적거렸다고 한다. 각 면단위를 돌며 전도활동을 펼친 이 집사는 각 면지역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는데 중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임육만 장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12개 정도의 면 교회를 개척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5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해남교회(옛 오순절교회)의 설립에도 이복덕 집사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해남읍교회는 1905년 김내섭씨와 한명숙씨가 고도리에 있는 방기남씨의 집을 임시기도 처로 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고도리에서 몇 개월간 자생적으로 운영돼 오던 읍교회는 임봉록씨와 이복덕 부부가 살던 남외리로 옮겨온다.
 임 씨 부부의 재산 헌납으로 9년 동안 남외리에서 생활했던 해남읍교회는 1924년에 이르러 지금의 수성리로 옮겨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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