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천 옛정취 마지막 상징물 7월에 철거


◇ 버드나무, 멱을 감는 아이들도 모두 사라진 해남천은 마지막 남은 위천교가 철거되면 이제 옛 모습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 1964년 고 강정민씨가 사재를 털어 만든 위천교 개통식.

 

 42년동안 읍 매일시장과 인근 마을을 연결해 주었던 위천교가 옛 추억과 애환을 담은 채 사라진다.
  해남군이 오는 7월경 인근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면서 다리를 확장해 현 위천교를 허물고 현대식 다리를 세우기 때문이다.
  위천교는 옛 중앙극장 대표였던 고 강정민씨가 사재를 들여 세운 것으로, 지난 64년 인근 중앙리와 성동리 주민들이 통행하는데 불편을 겪자 중앙극장을 공사하면서 동시에 세운 것이다.
  당시 해남천에는 홍교와 천변교만 있어 주민들이 매일시장이나 군청 등 관공서를 가려면 멀리 돌아가거나 징검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이를 알게된 강정민씨(1990년 작고)가 부친의 강현선옹(1975년 작고)의 호를 달아 위천교로 다리 명칭을 정했으며 해남군 사설교 1호가 됐다.
  자신의 이름 보다는 아버지 호를 달도록 해 옛 사람들은 이 다리를 ‘효자다리’라고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 위천교는 해남천을 건너 번화의 상징인 중앙극장으로 통하는 다리였다. 

 

위천교가 세워지면서 상인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통행이 많아졌고 중앙극장 주변으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해 지금도 해남읍 상가 중심지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도 시장 상인들의 손수레 몇 대가 세워져 있는 만큼 위천교는 당시에도 손수레와 지게, 자전거로 짐을 나르며 생계를 유지했던 일꾼들의 고단한 삶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자전거나 리어커 정도만이 지날 수 있는 위천교는 학생들에게는 통학로로, 아낙들에게는 장보러 가는 길로, 상인들에게는 삶터로, 직장인들에게는 출근길로 42년동안 수 많은 이들의 통행로가 됐다.
  해남천과 인근 상가, 매일시장은 위천교를 빼고는 모두가 변했다.
  당시 주변에는 초가집들이 즐비했고 시장에는 판자로 된 상점들이 10여채 있었다.
 개천에는 다리가 없어 징검다리가 곳곳에 있었고 물이 맑아 붕어와 피라미들이 많았으며 천 주변으로 빨래 방망이를 든 아낙들이 옹기 종기 모였다.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멱을 감고 물고기 잡는다며 모여들었고 겨울에는 썰매 탄다며 몰려들어 늘 인파가 붐볐던 곳이었다.
  천가에는 아름드리 수풀들이 개울을 둘러싸고 푸른 빛 버드나무가 긴가지를 냇가로 늘어뜨려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그 정겨웠던 풍경들도 기억으로 만 남게된 지금 그나마 남아있던 위천교 마저도 추억속으로 사라지게 돼 아쉬움을 준다.
  이 때문에 섭섭함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당시 위천교 공사에 참여했고 고 강정민씨의 양조장 관리인으로 일했던 김만석(74 성내리)씨는 “어려웠던 시절 일꾼들이 지게로 모래와 철근을 날랐고 삽과 곡갱이만으로 세웠던 애정 깊은 다리”라며 “40년이 넘은 세월동안 아무 탈 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지만 곧 위천교가 다시 세워진다니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때는 공사 장비가 전혀 없었던 시절이라서 다리 세우는데 상당한 노동력이 소요됐지만 멋스럽게 만들어보고자 다리 형태를 구부러지게 하는 등 많은 고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 강정민씨의 조카인 해남군 노인종합복지관 강형식관장도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다리지만 당시에는 공익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세웠던 다리로 해남읍 상가와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많은 이들의 오랫 추억이 얽힌 위천교가 사라지게 돼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또 강관장은 “위천교는 부모 이름을 길이 남기고 지역민들 불편을 해소하고자 세운 의미 있는 다리로 다시 다리가 세워지더라도 위천교 명칭은 그대로 존속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덧붙였다.  
  위천교를 통행하다보면 왜 이렇게 다리가 좁을까? 너무 낡았는데,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이 다리가 세워진 배경을 알고 얽힌 이야기와 이 다리가 그 동안 해왔던 역할에 대해 안다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은 “올 여름에 위천교를 철거할 예정이다”고 한다. 현 낡은 다리는 없어지더라도 위천교에 담긴 의미는 그 대로 새겨져 보존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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