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속삭이며 맹세했던 님은 떠나고

아름다운 로맨스 가득한 '연기도'

 

 황산면 연자마을은 녹청자로 유명한 마을이다.
  명성 높은 녹청자의 비색만큼이나 젊은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면소재지에서 연자마을의 초입에 들어서면 둑방에서 왼쪽으로 500여m 지점에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이 섬이 바로 황산의 비경 중에 비경이었다고 하는 연기도이다.
  간척공사 전 연기도로 가는 길은 밀물과 썰물 때 하루 두 번에 바닷길을 열어 마치 푸른 수면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고, 섬 위에는 운치 있는 10여 그루의 소나무가 푸른 파도와 어우러져 그 자태를 뽐내며, 해마다 찾아오는 학의 무리로 장관을 이루었다.
  때는 조선이 개국한 14세기 말엽, 고려의 임금을 잃은 선비가 몸을 숨기고자 연기라 불리는 애첩과 함께 이곳에 내려오게 됐다.
  임금을 잃고 초야에 묻힌 선비와 연기는 하루하루를 땅을 일구고 베를 짜며 망국의 슬픔을 달랬다.
  또한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연기도에 매료되어 해가 기우는 저녁 섬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며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중국과 친교를 맺기 위해 사신으로 천거되었다는 조정의 부름이 내려오자 선비는 “반년이면 돌아오리라!” 약속하며 떠났고 연기는 홀로 남겨진 채 님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떠난 님의 소식이 없자 연기의 몸은 점점 야위어 병들어 갔다.
  한편 선비는 조선의 사신이 되어 중국과 친교를 위해 떠나는 자신이 못내 한스러웠다.
  고려임금에 대한 불충과 자신을  기다리는 연기의 생각으로 괴로워하기를 며칠 밤, 결국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차가운 서해바다에 몸을 날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녀는 님이 잠든 서해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마침내 연기도에 올라 마지막 생을 다했다.
  예부터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는 연기도는 지역 한량과 밀애를 즐기려는 연인들이 자주 찾은 황산의 주요 명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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