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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큐슈지역 고대 유적답사기[1]
한국관련 고대유적 관광지로 활용
2006년 01월 27일 (금) 00:00:00 박영자기자 hpakhan@hanmail.net


위부터

 

◇ 한국식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 뜬 백제관 건물.

 

◇ 백제 마지막 왕족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서정창원.

 

◇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정가왕을 모신 신사.

 

◇ 백제 기와모형을 재현한 백제촌의 보도블럭.

 

백제 마지막 왕족이 세운 백제마을 그대로 재현

한국인을 잡아라 - 큐슈 관광객 대부분 한국인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일본 큐슈지역 고대 한국관련 유적지 답사에 동행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큐슈지역은 한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관련 유적지를 적극 개발하고 있었다. 큐슈 전지역에 분포돼 있는 고대 유적지 중 한반도를 비롯해 해남과 관련된 고분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다.   - 편집자 주 -

 

  부산에서 3시간 이내면 도착하는 일본의 최남단 큐슈,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필리핀 등 아시아권의 관광 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이곳의 관광객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일본 큐슈는 우리와 관련된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어 고고학자나 역사전공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기원전후의 선사시대와 관련해 우리와 관련된 곳이 많고 백제와 형제이상의 관계를 맺었던 인연으로 백제 관련 유적지도 많다. 
  고대사를 비롯해 근대사까지 왜곡하며 독자적인 문화형성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평소 선입견과는 달리 이들은 한국과 관련된 유적지를 발굴 보존하고 그곳을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큐슈지역 고대 유적 답사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 점은 문화유적이 발굴된 현장에는 반드시 박물관 및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유적 현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옆 전시관에 전시해 한곳에서 유적과 유물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유적현지가 아닌 대도시에 종합박물관을 건립해 모든 유물을 전시하는 우리와는 달랐다.     

 

백제 마지막 후손들의 마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인들의 최후의 피난처는 일본 특히 큐슈지역이었다.
  당시 일본은 나당연합군과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던 백제에 4만여명의 지원군을 파견, 백제와 함께 나당연합군에 맞섰지만 지금의 금강하구인 백촌강 전투에서 대패해 일본으로 물러난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대패한 백제의 귀족들과 일본군은 큐슈인 후쿠오카 북쪽에 수성(水城), 즉 호를 파 물을 채우고 다자이후 관청 북쪽에 위치한 시오지 산 정상에 산성을 축조해 나당 연합군의 역공에 대비했다.
  나당연합군에 대패해 일본으로 건너온 백제 왕족과 난민들은 나당 연합군에 대비한 수성과 산성을 축조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지만 정착과정에서 일본 토착세력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며 쫓기고 쫓겨 큐슈에서도 가장 남쪽이자 오지인 가고시마 현에 정착한다. 백제인들이 만들어 조성한 마을이 바로 가고시마의 백제촌인 난고손(南鄕村)이다.

 

백제왕 기리는 축제 매년 열려

 

  난고손은 백제 멸망 후 의자왕의 아들인 정가왕과 그의 아들인 복지왕이 일본으로 도일해 세운 마을이다.
  이들은 일본의 토착세력과의 싸움을 벌이며 오지인 난고손까지 밀려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 전해되는 설화에는 난고손의 지형이 부여와 비슷해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난고손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18일 정가왕과 복지왕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시와스축제가 열린다.
  난고손 마을 중심부 제일 위쪽에는 정가왕을 모신 신사가 있고 이곳에서 90km 떨어진 히키신사에는 복지왕이 모셔져 있는데 시와스 축제에는 이들 부자를 비롯해 정가왕의 부인과 차남인 차지왕도 함께 등장해 서로 대면한다고 한다.
  농업과 의학 등 진보된 선진기술을 전파해준 이들을 신격화 해 신사에 모신 이 마을 사람들은  정가왕과 복지왕의 유물을 백제관 바로 위에 있는 건물인 서정창원(西正倉院)에 전시하고 있다.
  서정창원은 이들 백제 왕족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나라현에 있는 왕실의 유물창고인 정창원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1996년 지은 건물이다.
  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찾아서라는 문화유적답사를 기획한 전남대학교 박물관장인 임영진교수는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는 한반도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을 때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난고손도 백제의 멸망이라는 한반도의 변화가 만들어낸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임관장에 의하면 기원전부터 한반도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청동기시대 즉 야요이 시대를 여는 등 선진화된 문물을 적극 전파했는데 일본으로 건너간 한반도인들의 1년 평균수는 1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즉 일본은 한반도인들에게 있어 마지막 피난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 토착세력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었지만 일본에 선진화된 문물을 전하는 일본의 발전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백제인이 만든 산성

 

  백제의 멸망으로 탄생된 일본 속 백제문화는 난고손 외에 후쿠오카 현의 다자후의 시에 위치한 미즈키(水城) 유적과 오노조(大野城)가 있다.
  미즈키유적은 성 주변에 호를 파 물을 채우는 일본 고유의 성 모양이지만 성을 쌓은 양식이 한반도식 토성으로서 백제의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자이후의 시 북쪽에 위치한 대야성은 665년 백제의 망명세력의 지도 하에 백제의 산성을 모방해 축성한 성이라고 한다.
  커다란 도시가 생성되면 3∼4km 이내 산 정상에 타원형 또는 테뫼형 산성을 축성했던 양식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고대산성의 모형이다. 이와는 달리 일본은 도시 주변에 넓은 호를 파 물을 넣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해자형 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백제 귀족의 지도에 의해 축성된 대야성은 약 8km에 걸쳐 토담과 석벽으로 산 정상부를 두르고 그 내부에 식량과 무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군이 설치돼 지금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건축양식 철저히 백제식으로

 

  현재 이곳에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왕궁 터에 세워진 옛 부여국립박물관의 객사를 실제 크기로 복원한 백제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의 협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지붕의 곡선이나 색채가 무척 화려한 한국식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기와와 돌은 한국에서 가져왔고 처마의 적, 녹, 황의 극채색의 단청은 한국 전문가의 손으로 재현됐다.
  일본인들이 백제촌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옛 역사를 복원하려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국의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측면도 강하게 내재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 대부분은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철저히 백제식의 문화를 재현하려는 이곳은 인도의 보도블럭도 연화문 무늬가 새겨진 백제 기와 모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백제관 건물을 주민들 스스로 돈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백제마을 난고손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백제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매우 긍지높게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유명해진 연애인 배용준씨 덕택에 백제인의 자손이라는 긍지를 더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날 우리를 안내한 양애란 가이드는 배용준씨 덕택에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서구 지향적인 일본인들은 같은 동양인들을 낮게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데 요즘 와서 한국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고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일본인들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 인간의 이미지가 한 국가 전체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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