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회 토론 끝에 자연재생사업을 추진하다

역간척을 통한 새로운 농촌 4. 간척지 대신 습지 선물-아자메노세 복원 사례

2025-09-29     이창섭 기자

1. 지역갈등·실효성 논란에 빠진 간척지의 역습
2. 역간척 성공사례 순천시와 서천군을 찾다
3. 세계적 호수관광지가 되다-일본 비와호 사례
4. 간척지 대신 습지 선물-아자메노세 복원 사례
5. 농촌소멸 대안 역간척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아자메노세 습지 전경(1).

훼손된 습지에 숨을 불어넣다 

일본 남부 사가현 마쓰우라강 중류에 위치한 아자메노세 습지. 아자메노세의 어원은 엉겅퀴의 여울이다. 엉겅퀴는 전체가 털로 덮여 있는 여러해살이 풀로 엉겅퀴가 많아 아자메노세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임을 알 수 있다. 아자메노세 습지는 자연재생사업의 표준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아자메노세 습지는 오랜 세월 논으로 개간돼 사용됐지만 홍수피해가 잦아 습지 환경이 90% 넘게 사라졌다. 실제로 마쓰우라강 유역은 과거부터 매년 홍수가 잦았다. 가장 피해가 컸던 1953년에는 무려 573가옥이 전파나 반파 피해를 입었고, 3만537가옥이 침수피해를 그리고 농경지 1270ha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가라쓰시는 홍수 피해를 예방하고 기능을 상실한 습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습지 복원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80억원을 들여 농지가 돼 버린 습지 터 6ha(6만m²)를 매입해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습지를 다시 살리는 공사에 나섰다. 습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6m 가량 파내고 제방을 정비한 다음 구불구불한 수로를 만들어 마쓰우라 강과 연결했다.

▲아자메노세 습지 전경(2).

국토교통성 다케오 하천사무소의 고우로기 연구원은 “폭우가 내릴 때 습지 쪽으로 물을 가득 모아두었다가 서서히 아래쪽으로 흘려보내 홍수를 막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인데 결국 습지가 홍수 때 물을 조절하는 천연 저수지가 되는 셈이다”고 말했다.

생물이 살 수 없었던 환경도 돌아왔다. 습지가 복원되면서 마쓰우라 강에 사는 잉어, 붕어, 미꾸라지, 메기 등 다양한 수생 생물과 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며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다. 사람과 생물이 다시 만나는 사업이 된 것인데 아자메노세 습지 복원을 자연재생사업이라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줘’가 아닌 ‘합시다’가 만든 결과물

아자메노세 습지복원 사업은 관 주도의 일방적 사업이나 일시적 성과내기식으로 추진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가라쓰시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설정하지 않고 주민, 주민모임단체, 학부모, 노인회 등이 참여하는 검토회를 만들었다. 행정과 교수, 연구원 등은 조언자 역할로 참여했다. 홍수 예방과 습지를 살리기 위해 어떤 사업이 필요한지를 주민 스스로 나서 연구하고 토론하며 협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다케오 하천사무소의 가타후치 히로토시 과장.

다케오 하천사무소의 가타후치 히로토시 과장은 “무려 125회에 걸쳐 공개 토론회를 열어 계속 협의하며 다수결 없이 만장일치로 자연재생사업을 추진하기로 결론이 내려졌다”며 “특히 관에 ‘해주세요’가 아니라 ‘우리가 합시다’라고 뜻을 모아 사업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주민들 스스로 합의를 마련해 계획이 짜여지면서 사유지 매입을 둘러싼 갈등은 처음부터 발생하지도 않았다. 관이 주도해 땅을 사들인 게 아니라 주민들이 합의를 통해 생태계 보존으로 먼저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주민 참여는 현재 진행형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자메노세 습지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125회에 걸쳐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단체가 생겨났다. 이후 이 단체는 NPO(비영리 활동법인)로 발전했고 아자메노세 습지 주변을 유지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NPO는 습지 주변 상사리와 하사리, 스기노 등 3개 마을 주민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자연재생사업을 보여주는 견학회를 열고 낚시대회도 열고 있다. 

인근 오찌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습지에 마련된 계단식 논에서 모내기와 수확 등 생태 체험학습도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수확한 찹쌀은 가라쓰시에 기증돼 어린이식당 등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활용되며 의미를 더하고 있다.

▲NPO 의장을 맡고 있는 에리 다카오 가라쓰시 의회 의장.

NPO 의장을 맡고 있는 에리 다카오 가라쓰시 의회 의장은 “고령화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학생 수 감소로 사리 초등학교가 오찌 초등학교로 통합돼 아이들 목소리가 사라졌는데 이렇게 자연재생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다시 찾아주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에리 다카오 의장은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백지상태에서 125회에 걸쳐 주민들이 공개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하나로 모아 자연재생사업을 제안해 가능했다”며 “태양광 발전 사업보다는 미래환경과 미래세대를 위해 주민들이 습지 복원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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