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고도로 초대합니다
김성률 (해남고 교사)
며칠 뒤면 추석이군요. 이 시기가 되면 나락 익어가듯 그리움이 몰려오기도 하죠. 달마고도 아랫마을에도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그리움이 몰려오고 있답니다. 열차표는 끊어놨나요? 버스표는요? 차량 점검은 하셨나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세차를 하게 되기도 하죠. 추석이니까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괜스레 마음이 들썩이기도 하죠. 그것은 이 시기가 되면 끊겼던 탯줄이 다시 이어지듯 거리가 멀수록 더 애틋한 전류가 흘러 심장 안벽을 저릿저릿 자극하죠. 올해는 달마산 위로 얼마나 큰 달이 뜰까 궁금합니다.
혹시 지금의 삶은 어떠세요? 사는 일이 늘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힘든 것만도 아닌 그것들이 버무려진 아노미라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힘들다는 것의 무게가 조금 더 크게 다가오죠. 그리고 그중 몇이 유독 도드라져 삶을 온통 쥐어짜는 듯하기도 하더군요. ‘다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이가 징하게도 아프죠. 또 그 사이에 갇히면 지나갈 것 같지 않는 어떤 절망이 엄습하기도 하죠. 그럴 때면 인생 참 징그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런 날엔 그리움이 슬픈 표정으로 오곤 하죠. 그리고 다가와서 힘내라고 하는데, 더 슬퍼져서 그만 왈칵 울고 말기도 하죠.
얼마 전에 그런 사람이 달마고도엘 왔더군요. 애써 감추던 슬픔을 꺼내놓고 산공기를 마셨답니다. 달마고도를 걸었죠. 얼마를 가다가 새소리가 들리더라 하더군요, 또 얼마를 가니 바람결이 감싸더라고 하고, 또 얼마를 가니 햇살이 미끄러지는 나뭇잎이 보이더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얼마를 걷다가 허파에 쌓였던 슬픔이 씻기는 영적 경험을 하였다고도 하더군요. 신기하죠, 그런 뒤에 몸무게가 빠지고 걸음이 가벼워지더래요. 이곳에서 살아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서둘러 거처를 마련하였답니다.
이런 삶을 살아보자는 얘길 나눴습니다.
1. 즐긴다. 개울에 들어 발 담그고 바위에 걸터앉아 세상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잔 한다. 눈 쌓인 산길로 미황사 부처를 만나 시름 좀 털어놓고 도솔암 기암에다 소망 좀 부려놓고 마봉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바위 틈마다 피는 진달래 속에 앉아 같이 봄이 되어보거나 때죽나무에 꽃들이 연등처럼 달리면 그 아래로 벗을 불러 모은다.
2. 별들과 소통하는 대화법을 찾는다. 가로등을 등지고 서면 흐르는 은하수를 따라 산문 앞에까지 걸어가며 벌레의 대화법을 배우고, 풀과 나무는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해석하고, 밤이 속삭이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자.
3. 꿈꾼다. 살아온 날들에게 말을 걸고, 아쉬웠던 것들을 불러 어루만진다. 폼나는 것들에서 벗어나 버거웠던 것들과 슬펐던 것들과 기쁨을 주었던 것들을 불러 화해를 청한다. 그 화해한 이야기를 엮어 한 권의 책이라도 가진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나를 용서하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익혀야지. 달마산을 스승 삼아 용서와 화해를 위한 기도문을 써야지.
굳이 손가락을 걸진 않았습니다, 우리의 약속이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어느 날 날아갈 듯하거든 날아가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날 수 있으면 텃새가 되어도 좋겠다고.
달마고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혹시 여기 오실 거라면 주의 사항 한 가지 전해 둡니다. 제가 쓰는 달마고도 이야기 중 한 대목입니다.
“중늙은이라 해도 그런가 할 나이에 / 많은 것을 못 본다 해도 서운하지 말자/... 눈물이 맺힐 때나 버거워 어깨가 처질 때 / 올려다보면 슬며시 내려앉는 별빛... 여기 달마고도에선 누구라도 슬픔의 무게는 같다 / 통증의 깊이까지도 / 그래서 산도 별도 / 누구에게든 같은 높이에 머문다 / 이곳에선 잘났다고 우쭐대지 말라 / 모난 적 없는 별들이 억겁을 살고 있는 곳 / 알아줄 이 누가 있으랴" 여기서는 당신이 행복해진대도 결코 아무렇지 않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