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다시 점검해야 할 때

오영상 (광주생명의숲 공동대표)

2025-09-01     해남신문

비즈니스행정이라는 개념이 지자체에 도입되면서 관광객 유치가 지자체 행정의 화두가 돼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는 그리 낯선 용어가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수백억원의 비용을 들여 CI를 바꾸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때로는 아무리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거쳤다고 하지만 안 바꾼 만 못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군민들은 군의 시각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데 그리 너그럽지 못한 것 같다. 설왕설래 말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군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충북의 한 지자체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군수가 관광객과 주민 모두가 보다 쾌적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공공디자인 개발 및 제작설치 사업현장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핵심단어는 ‘관광객과 주민 모두’가 아닐까.

CI작업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작명이다. 영어로 네이밍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주위에 태어나자마자 가졌던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 꽤 많다. 널리 알려진 박근혜국정농단의 당사자의 개명은 차치하고라도 취업이 안 된다, 건강이 좋지 않다, 사업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개명을 하는 사례가 많다. 기관명, 그룹명, 회사명도 마찬가지다. 기관명은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몇 해 전 흑석산에 있는 ‘가학산자연휴양림’이 우여곡절 끝에 ‘흑석산자연휴양림’으로 바뀌었다. 여러 의견이 많았지만 공론화과정 즉 숙의과정을 거쳐 바꾼 것이다. 대동여지도 등 문헌까지 동원됐다. 행정구역상 마을뒷산으로 여겼기 때문에 남들보다 수많은 얘깃거리를 들었다. 

그중에 당시 이 지역 출신 군의원이 고집해서 흑석산 대신 가학산으로 정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했다. 이름을 바꾸는데 찬성하는 일부 사람들의 쾌도난마식 주장은 등산인과 군민들에게 흑석산이 더 알려졌다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표현대로라면 웃프다.

문제는 누더기가 된 이정표와 외부인들의 혼란만 남았다는 것이다. CI를 바꾼 대기업처럼 수억을 들여 따로 홍보할 수도 없으니 세월이 약이 될 뿐이다. 그래서 기관명, 시설명을 바꾸는 작업은 충분한 공론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힘 있는 한두 사람의 우격다짐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군이 운영하는 시설 이름에서, 입간판에서 고쳤으면 하는 곳이 많다. 군민들의 연구회, 협회, 모임이름도 고유명사표기법에 따라 띄어쓰기나 가운데 점을 표기하지 않는데 군의 기관명, 시설명에서 조차 띄어 쓰고 심지어 가운데 점까지 동원한다. 홍보전문가들은 “네이밍은 짧아야 임팩트가 있다”고 말 하지만 도로변 입간판을 길게 채운 기관명, 시설명이 많다. 정상적인 속도로 운전하면서 다 읽지 못할 정도다. 너무 설명적이거나 관념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관명뿐만 아니라 글자체도 말이 많다. 문화와 관광,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만든 재단법인의 글자체에 대해서도 젊은이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 대형입간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아마 새출발하는 군 출연기관명을 윗선에서 유명서예가에게 부탁해서 확보한 제자(題字)이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작품성과 명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년 전에 창간한 한 지역신문은 유명 서예가에서 제호 글자를 부탁했지만 현대 감각에 맞지 않아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며 디자인부서에서 창조하다시피 다듬어 갔던 사례가 있다. 시쳇말로 4글자를 문대고 또 문댔다는 것이다.

이제 군도 10여 년 전 전남도가 경관디자인과장을 외부공채를 통해 수혈했듯이 개방하든지 내부인사를 배치해서 모든 공공디자인과 경관디자인을 걸러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귀 기울어야 할 때다. 입간판, 현수막, 문서까지 다듬어주는 수문장이 필요하다.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수차례 수상했다고 으스댈 일 아니다. 노루 잡은 막가지 삼년 우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