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간척은 ‘지속가능한 농촌’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역간척을 통한 새로운 농촌 1. 지역갈등·실효성 논란에 빠진 간척지의 역습

2025-07-07     이창섭 기자

(편집자주) 농지확보 등을 위해 간척사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지만 제 기능을 상실한 채 태양광발전 사업이 추진되며 농지잠식과 생태계 파괴 우려는 물론 지역주민들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안으로 역간척이 제기되고 있는데 국내외 관련 사례를 통해 그 필요성을 점검해본다.   

1. 지역갈등·실효성 논란에 빠진 간척지의 역습
2. 역간척 성공사례 순천시와 서천군을 찾다
3. 세계적 호수관광지가 되다-일본 비와호 사례
4. 간척지 대신 습지 선물-아자메노세 복원 사례
5. 농촌소멸 대안 역간척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300만평서 태양광사업 추진 

▲수년째 농사가 중단돼 뻘과 잡풀이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는 혈도 간척지.

간척지마다 최근 태양광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황산면 고천암 간척지 30만평, 화산면 고천암 간척지 30만평, 북일면 사내지구 간척지 34만평, 화산면 관동지구 간척지 44만평, 문내면 혈도간척지 156만평에서 태양광발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5곳에서 축구장(7140㎡) 1386개를 합친 것과 같은 300만평의 농지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 셈이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3000평의 농지를 임대해주면 연간 2100만원, 평당 7000원의 고정 수입을 보장해주고 20년 동안 임대기간이 보장된다는 말로 주민들과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농민들은 “고령화와 기후 위기, 쌀값 하락으로 갈수록 농사짓기 힘든 상황에서 솔깃한 제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주민참여형으로 직접 일정부분 투자를 하면 수익을 나눠주는 방식도 추진되고 있다.

간척지마다 태양광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지난 2019년 농지법이 개정되며 농업진흥구역이라 하더라도 염해 판정을 받은 간척지라면 태양광 발전시설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대규모로 부지 확보가 가능한데다 이재명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표방하며 관련 절차 완화와 지원도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간척지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은 농민들의 소득 증대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농지가 사라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식량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농지 소유자 상당수가 외지인이어서 임대농들은 생계를 잃고 마을을 떠나게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간척지에 다시 바닷물을 유통시키는 역간척을 통해 태양광발전 사업 대신 생태계 복원으로 새로운 활력소를 찾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사내호 생태계 복원 필요

▲수질이 갈수록 나빠져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내호.

사내호는 지난 2002년 강진과 해남 사이 강진만 바다를 막은 사내방조제로 인해 생겨난 민물 호수로 강진군이 관리하고 있다. 강진 인근과 해남 북일면 내동, 용일 등에 걸쳐 사내 간척지가 조성돼 경작지가 400여 ha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간척사업 이후 사내호 수질이 5~6등급으로 나빠져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근 수십 곳의 축사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각종 오폐수 퇴적물까지 쌓여있는 실정이다. 농업용수 기능도 상실했지만 홍수조절기능도 잃어버렸다. 평소에 배수갑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해야 하지만 수질이 나빠 강진과 완도 쪽 어민들이 반발하며 홍수 위험이 있기 전까지는 물을 바다로 내보내지 않고 가둬두면서 폭우가 내릴 때마다 주변 농경지에 침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내호 담수호의 민물이 바다에 유입되면서 염분농도가 낮아져 강진 쪽 양식 전복이 전량 폐사하는 피해가 나기도 했다.

사내호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지역 간 갈등양상마저 보이자 강진과 해남에서 모두 태양광 사업자들이 주민참여형을 바탕으로 현재 태양광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용수와 홍수조절 기능을 모두 상실한 사내호에 대해 태양광 대신 역간척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신평호 북일면 주민자치회 상임고문은 “두 가지 기능을 상실한 만큼 사내호와 바닷물이 해수 유통이 될 수 있도록 역간척을 하면 갯벌과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다”며 “호수와 바다 쪽 배수갑문 두 개 정도를 뚫어 관찰하며 단계적으로 실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간척지 전체나 사유지인 농경지를 매입해 추진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의 의지만 있다면 전국 최초의 단계별 역간척 사례가 가능하며 정부 차원에서 관련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교수와 전문가들도 관련 토론회가 열릴 때마다 본래의 자연으로 생태계를 복원해 친자연 수산양식 산업을 활성화하고 완도·해남·강진군 3개 지자체가 하나 돼 융·복합 6차 산업지역으로 발전시키면 더 큰 공익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업용수 부족 부분은 별도의 용수를 개발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혈도, 관광·역사·생태공원화로    

황산과 문내 일원에 위치한 혈도에도 156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남동발전 측은 주민참여형으로 지역과 주민이 상생 공존하는 재생에너지 개발이 가능하고 국가 차원의 재생에너지 전력공급 확대와 해남군의 솔라시도 데이터센터 유치에도 필요한 사업이다는 입장이다. 고령화로 지역소멸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태양광발전사업으로 이익을 공유하고 기반구축 등 지원사업으로 에너지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동발전이 지난달 25일 황산면사무소에서 혈도간척지 태양광사업에 대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문내지역에서는 설명회 개최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규모의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농지가 잠식돼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데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 장소라는 역사성과 지역민들의 애환이 담긴 상징성이 모두 사라진다고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태양광 사업을 위해 농사를 위한 땅 임대가 중단되며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임대농 15명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고 염해피해를 이겨내고 일궈논 농경지는 현재 잡풀만 무성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역간척을 통해 갯벌을 복원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자며 혈도역간척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다. 일제 식민지 때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보상도 없이 공유수면 이용 권리를 박탈하며 간척지가 조성된 만큼 소송을 통해 땅을 되찾겠다는 입장이다. 

김재구 역간척추진위원회 대변인은 “역간척을 통해 갯벌을 복원하고 옥매광산과 명량해전의 역사를 연계해 해안가에 휴양지와 작물원 등을 만들어 생태와 근대사, 관광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는 “태양광 사업의 경우 생태요충지 한가운데에 진행되는 문제점과, 수익 대부분이 발전사업자와 토지주들에게 돌아가며 20년 운영 뒤에는 폐기물 처리와 사막화,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등 막대한 환경 비용이 수반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역간척을 위해 필요한 사업비 800억원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방안이 있다고 말한다.

전 대표는 “사유지 매입으로 필요한 600억원은 대국민 캠페인을 통한 기금 모금과 전남도와 해남군 부담, 토지소유주 기부 등을 3분의 1씩 확보하면 되며 공사비 200억원은 정부의 갯벌 복원 사업으로 국비 확보가 가능하다”며 “토지를 소유한 사업자는 역간척을 통한 해양관광 사업 참여나 갯벌 복원 시 사업 기회 제공 등으로 기부한 액수만큼 수익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