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 노인회관 앞 왕버들나무

김경문(산이면 출신)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2024-11-04     해남신문

 

안골 노인회관 앞 왕버들나무

안골 노인회관 앞 
왕버들나무 한 분이 우뚝 서 계시다
얼굴엔 검버섯이 피고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혀있는 걸 보니
올해 춘추가 400년쯤 돼 보이지만 
아직도 푸르고 정정하시다
오랜 세월, 새들을 품어 
하늘과 교통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헐벗고 병든 자들의 소원을 한 올 한 올 풀어주었으니
정월 초사흘 생일상을 받는 날에는
탁주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켜고
북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다가도
오가는 노인들을 그늘로 불러 놓고
하늘 가는 길을 훈수하고 계시다

 

가을 전어

갯일 하기 싫어 밤 보따리 싸들고 뭍으로 나간 며느리,
목포 역전 다방에서 삐깍구두 신고, 궁디 씰룩거리며
차 배달하는 걸 해남댁 눈에 띄었겠다

두레박줄 타고 온 동네 소문이 술렁거렸는디,
그해 가을, 설렁설렁 찬 바람 불어오자
막배 타고 슬그머니 돌아온 며느리,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맬갑시 눈물 훔치는 걸 보고
시엄씨 문초가 시작되었다

“너 이년!
서방 피 다 빨아 묵고 새끼들 팽개치고 집 나갈 때는 언제고
뭣 땜새 인자 기어들어왔어!
흥, 곰곰이 생각해본께,
이년이 거시기 땜새 왔구만요 
흉측한 년이…”

“어무니요! 거시기 땜새 온 것만은 아니어라,
새끼들이 눈에 얼씬거려서 왔어라”

“이년아, 거짓말 말어!
니가 맬갑시 왔것냐?
전어 창시 같은 속 다 알고 있응께
그 주둥아리 다물어!
쇠비땅으로 콱 패불 것잉께,
어매! 복장 터져 죽것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