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로 본 웃픈 현실

2024-04-15     조효기pd

외신이 꼽은 우리나라 총선 이슈 중 첫 번째는 단연 Green onions(대파)였다.

선거철이면 전통적으로 북핵과 미국 안보가 인기 의제였던 걸 생각하면 참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작년 연예 대상을 받은 전현무 씨가 머리에 썼던 대파 왕관 사진이 소환되고, 연설 현장에 나선 정치인들의 손에도 대파가 등장했다.

대파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흔히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 밖에서 찍은 ‘투표 인증샷’이 인터넷상을 돌고 도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른바 ‘대파 인증샷’이 등장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서둘러 투표장에 대파를 들고 오면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고, 정치권이 이에 반응하며 논란이 되자 공정하고 평온한 투표 진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대파를 가져와도 되는데 투표장 밖에 보관해 놓고 투표장으로 출입하도록 안내했다며 불끄기에 나섰다.

숫자로 인해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났다. 지난 2월, MBC뉴스 일기예보에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이란 소식을 전하면서 파란색 1의 이미지를 강조했는데 민주당의 색과 기호 1번이 연상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MBC는 강동구와 강서구, 금천구 등 서울 곳곳에서 이례적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1마이크로그램을 기록해 강조한 것이고, 2마이크로그램이었으면 2를 썼을 거라고 밝혔다. 날씨 정보에 그날의 초미세먼지 농도 극값을 내세우는 건 종종 해왔던 일이고 예전 방송화면을 덧붙였다. 결국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논의 끝에 법정제재인 ‘관계자징계’를 의결했다. 법정제재는 방통위의 방송사 재허가와 재승인 시 감점사유가 된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8일 MBC는 인기프로그램 복면가왕의 9주년 특집방송이 조국혁신당의 9번을 연상할 수 있어 결방했다. 이에 야당 정치인들은 ‘간첩신고는 113에서 224로 바꿔라’, ‘파란색 9가 있는 KBS 9시 뉴스도 폐지해라’는 등 여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여당 측은 논란을 의도하고 일부러 방송을 연기했다며 ‘야당과 짜고 친다’며 당장 방영하라고 맞섰다. 조국혁신당은 자체적으로 포스터를 만들어 복면가왕 9주년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역대 가장 긴 51.7cm에 달한다. 흔히 신문 세로 길이라고 보면 된다. 선관위는 매번 길어지는 비례용지에 애를 먹어 지난해 34개 정당까지 가능한 새로운 분류기를 도입했지만, 더 많은 정당이 등록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 총선에는 전체 38개 정당 가운데 34개 정당이 득표율 3%에 미치지 못해 의석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