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공동빨래터

아파트 아낙네들 빨래 이고 하나둘 몰려오고

 

◇겨울철 묵혔던 빨래감들이 따뜻한 봄햇살 아래로 나올 때다. 서로간의 재잘거림으로 삶의 느슨함과 즐거움을 알아갔던 읍 남동빨래터.

  청명한 봄, 찰랑찰랑 흐르는 샘 주변으로 머리 가득 빨래를 인 아낙네들이 몰려온다.
 샘을 둘러앉은 아낙네들의 바쁜 손길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입도 바쁘다.
 옛날 옛적 남성들의 정치는 주막에서 이뤄졌지만 여성들의 정치는 빨래터에서 이뤄졌다.
  여성들만의 독무대, 이곳에서만큼은 상하도 노소도 없이 여성 누구나 발언권을 가지고 흐르는 물 속에, 방망이질 속에 가슴에 맺힌 시름은 어디로 가고 서로간의 재잘거림으로 삶의 즐거움을 알아갔던 빨래터, 그 빨래터가 도심인 읍 남동에 자리잡았다.
  어디에서 이렇게도 맑고 고운 물이 흘러나올까. 어떤 사람은 지하의 수맥에서 흘러나온다 하고 어떤 사람은 금강골의 물줄기라고 말한다.
 그 물의 시작이 어디이건 이 샘은 남동마을과 같이했다.
 해남천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발되기 전 이 샘은 밭과 하천의 경계지점에 위치했다. 모래와 자갈이었던 곳에서 일년내내 물이 흘러 나왔다는 것.
 겨울이면 따뜻한 물을, 여름이면 시원한 물을 내 품어주던 물줄기 주변으로 동네사람들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들녘에서 집으로 가던 중 손과 발을 씻곤 했다.
 그 때만해도 해남천의 물이 워낙 맑아 동네빨래터는 해남천이였다.
  그러던 40년 전 해남천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곳 빨래터에 아낙네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이곳 빨래터는 지금처럼 어엿한 모습은 아니었고 그저 아낙네들이 빨래하기 좋게 물웅덩이를 넓혀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해남천이 오염되자 이 곳을 이용하는 아낙네들이 더욱 늘어나고 십시일반 돈을 걷는 등 아낙네들의 노력에 의해 이 곳 빨래터는 제법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의 모습은 3년 전 주민 숙원사업으로 이뤄졌다.
  젊을 적 이 곳에서 빨래를 했다는 박복남할머니(83)는 찰랑찰랑 흐르는 물에서 빨래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며 마셔도 될 만큼 너무도 맑고 깨끗한 샘이라고 말한다.
  도심 속 빨래터, 읍 남동의 명물이 아니라 해남읍의 명물이라고 밝힌 이차량 남동이장은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보면 옛 시골 빨래터가 연상돼 마음까지  풍족해진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동냥치 냇가라고 불렀다는 이 곳 빨래터는 신명아파트 주부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아침부터 오후 햇살이 남아있을 때까지 사시사철 이용되는 빨래터, 가정마다 상수도가 연결되고 손쉽게 빨래할 수 있는 세탁기가 있지만 알뜰 주부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빨래터가 주는 풍치, 따뜻한 봄볕 아래 흐르는 물 속에 손을 담그며 이웃 집 아주머니와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가 없다면 빨래터를 찾은 주부들의 수도 적을 것이다.
  옛 풍속을 잇기라도 하듯 젊은 주부들의 모습이 더 많이 띠는 이곳 빨래터는 해남읍의 정겨운 정취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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