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동안 변함없는 최고 물맛

장마 가뭄에도 항상 그 양만큼 찰랑찰랑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끊임없이 바뀌어도 수백년동안 변함없이 그 맛 그대로 간직한 채 마을을 지키는 우물샘. 장마가 지고 한순간 산천을 덮은 소나기가 내려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양 그대로 그 맛 그대로를 유지해 온 옥천 영신 마을샘은 지금도 마을사람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어느 유명한 약수터 물보다 더 맛이 있고 수질이 좋다는 영신리 우물샘은 깊지도 않는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난다. 육안으로도 솟는 물을 볼 수 있을만큼 수면이 얕은 바위에서 샘솟는 이곳 석간수는 봄날 갓 피어나는 산천처럼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이다. 또한 산뜻한 느낌만큼 물맛도 과히 일품.
  가뭄이 들어도 물 양이 변함이 없고 심한 장마가 들어도 물맛에 변함이 없었던 이 곳 유물은 상수도가 발달하기 전 마을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공동샘이였다. 물지게 지고 우물을 찾던 남성들과 동이 이고 샘물을 긷던 아낙네의 발길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이어졌던 이곳 우물은 모습만 조금 바뀌었을뿐 옛날 맛 그대로를 유지하며 지금도 이곳 마을의 자랑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이희춘씨(69) 소유가 된 집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이 우물은 60여년 전에는 양회삼씨(86) 소유의 집 우물이었다. 물맛이 워낙 좋고 변함 없는 물 양이 신기해 신령스럽기까지 했던 이 우물을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이용했기에 우물샘과 연결된 샛문까지 달려 있었다고 한다. 또 이 샘은 개인 집에 달린 샘이었지만 마을민 모두가 이용한 샘이었기에 청소도 마을민이 함께 하고 혹여 샘에 불순물이 빠지기라도 하면 모두 함께 물을 퍼내는 등 그야말로 마을민들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항상 넘치던 샘, 샘 사면으로 넘치는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모습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는 이 샘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넘치는 물을 흘러보내는 나무통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때 설치했는지 알수 없지만 백년이 넘도록 썩지 않고 남은 물을 밖으로 흘러보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샘은 마을 맨 위쪽에 위치해 큰산을 뒤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호랑이가 있던 옛 시절에는 산에서 범이 나타날까 두려워 혼자서는 물을 긷지 않았다고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물을 길었고 동네사람들에게 샘을 제공해준 주인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이른 새벽 집주인이 먼저 물을 기른 다음에야 마을사람들은 물을 길었다고 한다.
  마시던 물이 부족하던 시절, 바가지 하나만 있으면 철철 넘쳐나는 물을 얼마든지 길러 먹을 수 있었던 옥천 영신리, 영신의 옛 지명인 영계도 이 우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물 영자 시내 계자인 마을 지명이 마을 뒷산에서 흘려 내리던 남쪽의 옛 계곡과 이곳 샘이 어우러져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곳 우물에도 일화가 전한다. 밤에 이 집 사랑채에서 놀고 있던 농군 한 사람이 목이 말라 우물샘으로 갔는데 갑자기 샘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라는 것이다. 너무도 놀란 농군이 소리 지르고 사랑채의 사람들이 달려나오는 대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채 사람들이 다가와 보니 샘물은 그 모습 그대로 잔잔히 넘쳐흐를 뿐이었다는 것.
 물이 솟는 장면을 목격한 농군은 거짓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고 그 사실 여부를 확인키 위해 등불을 밝히고 샘 주변을 살피니 과연 물이 솟아나 넘친 자국이 샘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같은 신비한 현상이 또다시 일어날까봐 마을 사람들은 우물 주변에 소여물을 깔아놓고 아침이면 일어나 소여물에 물이 묻었나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신비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영험한 물에는 꼭 그 같은 신비한 일이 발생한다고 믿은 마을민들은 그 뒤로도 그 유물샘을 소중히 아끼고 가꾸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샘 주인도 바뀌고 그 샘을 이용했던 마을민들도 바뀌었지만 그 샘은 지금도 마을의 추억과 함께 남아있다. 모습은 조금 변했지만 물맛만은 그대로 간직한 채, 영신마을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옛 영화를 그리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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