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말선초 해남정씨의 등장

  변방에 지나지 않던 해남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학문과 문예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한다.
 그 이면에는 해남정씨라는 재지사족이 인근 지역 사족들과 통혼을 하면서 금남 최부를 중심으로 해남의 학문적인 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이병삼 교사의 15∼16세기 해남지방 재지사족 형성과 성장에 대한 일고찰을 참고했다. 
 해남지역 토착성씨들과 지배층을 이룬 재지사족들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해남육현인 금남 최부, 귤정공 윤구,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 취죽헌 박백응, 고산 윤선도는 해남정씨와 직·간접적인 혼인관계를 맺고 있다. (해촌서원)

  현재 해남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성씨는 해남윤씨, 여흥민씨, 김해김씨, 원주이씨, 무안박씨 등이다. 이 성씨들이 해남에 입향한 것은 조선 초로 해남윤씨와 여흥민씨는 해남정씨와 혼인해 해남에 정착하게 됐으며 무안박씨는 선산임씨와 혼인해 입향했고, 원주이씨는 계유정란, 김해김씨는 무오사화를 피해 해남으로 낙향한 경우이다.
  정치적인 격변기에 사화를 피해 해남으로 낙향한 경우를 제외하면 해남의 지배적인 성씨를 이룬 중심에는 해남정씨가 서 있다.
  고려시대로부터 해남의 토착성씨는 27개인데 그중 鄭 윤 송 백 丁 차씨 등 7개 성씨가 주를 이뤘다. 이중 鄭 송 차씨가 고려말 조선초에 해남의 대표적인 성씨로 자리를 잡았다. 그후 조선초 군현제 개편과정에 적극 참여한 해남정씨가 대표적인 토성의 지위를 갖게 됐고 송 차씨는 정유재란을 계기로 해남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해남정씨와 결혼해 해남인이 된 금남 최부는 호남의 4대 학맥 중 한 맥을 형성하며 해남의 학문 시대를 열었으며 그의 학풍은 귤정공 윤구,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에 이르러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들은 모두 해남정씨와 직간접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어 해남에 정착하게 된 인근지역의 재지사족(지역에 경제적인 기반과 사족으로 신분을 가진 집단, 사림)들로 중앙관직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 지역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해남은 백제시대 새금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 고려시대 해남현이라 불리며 땅끝, 변방의 왜진 곳, 왜구의 침략이 잦아 살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다.
  특히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략이 빈번해 진도와 해남 등 서남해안 일대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자 고려 조정은 섬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을 펼쳤고 이에따라 1350년 진도군민들은 영암군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후 해남의 삼산면 원진리 일대로 다시 옮겼다가 1437년 세종19년 87년 만에야 진도로 되돌아가게 된다. 
  조선초기 왜구의 침탈과 군현제실시로 해남은 1409년 태종 9년에 치소(현)를 고해남현(현재 현산 고현)에서 내륙인 옥산땅(삼산면 계동)으로 옮기면서 해남과 진도를 합해 해진군이라 칭했다.
해남윤씨는 해남을 본으로 한 유일한 성씨다. 1437년 세종 19년에 해남과 진도를 다시 분리해 삼산면 계동에서 해남읍 수성리로 치소를 옮기고 이름을 해남현이라 했다.
  이때 해남정씨는 고해남현의 토성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옥산현(삼산면 일대), 죽산현(마산과 해남읍 일부)과 옥천현(옥천과 해남읍의 일부)의 차씨 송씨 윤씨 등 주요 성씨들을 누르고 해남의 대표적인 성씨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해남정씨의 성장 배경에는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선초기 실시한 군현제 정착 및 치소 이전에 적극 협조한 덕에 영구적으로 향역(鄕役)을 면제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초에 해남정씨 원기는 스스로 읍사가 돼 혼란을 바로 잡았고 그 손자 재전은 호장이 돼 관사와 객사를 짓는데 자비를 지원했으며 해남과 진도가 분리되자 경사노비 62구를 관가에 바쳐 역을 영원히 면제 받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해남정씨는 막대한 경제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해남과 진도의 합군 및 분군 과정, 치소 이전에 깊숙이 개입했는데 당시 해남정씨의 위세는 그들의 근거지였던 고해남현이 해남과 진도의 분군 이후 현의 이름을 해남현이라 할 정도로 높았다.
  이렇게 해남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한 해남정씨는 15세기 이후 관직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인근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들과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을 높여간다. 해남정씨와 혼인을 한 대표적인 성씨는 나주인 금남 최부(탐진), 영암인 임수(선산), 이속가, 강진인 윤효정(해남), 진도인 민중건(여흥) 등 5 가문이다. 
  해남정씨는 금강동(현 해리)에서 살았는데 해남정씨와 통혼한 5가문도 모두 금강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 5가문의 자손들과 5가문과 통혼관계를 맺은 이들도 모두 금강동에 거주하게 됨으로써 금강동은 해남 재지사족들과 학문의 중심지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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