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사구미에서 만난 순비기 군락
모래밭 잘 보존돼 해안가 자생식물 다양...해양식물원으로 적합

ㅐ 사구미의 옛 이름은 불(火)등(嶝)이다. 가뭄이 지속되면 모래밭에 살던 갯방풍이나 사초 등이 죽어나고 모래가 빨갛게 타들어 가 멀리서 보면 모래밭에 불이 난 듯 하다는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모래채취로 그 양은 줄었지만 사구미는 지금도 1km 가량의 모래밭과 언덕을 간직하고 있다.  군내 대부분의 해안가에 해안도로나 방수벽이 설치되면서 모래가 유실되고 갯벌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 이곳은 비교적 모래가 잘 보존돼 있고 바다 속엔 진지리 밭도 드물게 발견된다. 이 모래밭은 생명력을 지니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샛바람(남동풍)이 불면 이곳 모래는 선착장이 있는 서쪽으로, 남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움직인다.  제주도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이 이곳에 작은 규모의 모래언덕을 만들어 놓는데 이렇게 높아진 언덕은 태풍이나 해일이 일면 다시 완만해 진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밭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그곳에는 갯방풍, 순비기, 갯보리사초, 통보리사초, 갯메꽃, 함초 등 해안가 자생식물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도 말로 ‘해녀들이 물 속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순비기는 모래 속에 나무처럼 굵은 뿌리를 1m도 넘게 내리고 살아가는 억척스런 생명력을 보여준다. 여름 내내 피어난 보라색 꽃은 바닷바람에 더욱 싱싱하다. 그 외에도 봄에 꽃을 피는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이나 방풍들이 늦여름 사구미를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서남해안에 자생하는 식물들은 이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국, 가로화단용으로도 적합한 참골무꽃과 갯수영, 반디디치, 해란꽃, 갯팥꽃 등등이 있다. 해남 해안가에서는 봄, 가을로 꽃을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자생식물을 연구하는 난지과수시험장 도서농업연구실 박재옥 연구사는 “사구미는 모래밭이 잘 보존돼 있고 식생도 다양하기 때문에 서남부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옮겨 심어 해안자생식물원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자생식물을 보존하고 육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국산 나리꽃이 네델란드로 건너가 모든 백합의 육종에 사용돼 그것을 다시 수입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다가오는 품종전쟁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해안가 자생식물을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도록 한 해안자생식물원은 전국 어디에도 없어 자연학습장으로, 관광상품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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