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네 놀러 갔다 원피스를 여러 벌 얻어왔다. 인이는 자기 것이라고 집에 올 때까지 그걸 꼭 안고 왔다. ¨지금부터 패션쇼를 하겠습니다.¨ 얻어온 옷가지들을 펼쳐놓고 마음에 든 것부터 입어보기로 했다. 인이가 새빨간 원피스를 골랐다. 환이도 질세라 연한 아이보리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인이는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보더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엄마! 인아 예뻐?¨ 내게 뻔한 질문을 한다. ¨그럼. 우리 딸 최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환이도 치마를 입어보겠다고 용을 쓰더니 큰 머리에 걸려 들어가지 않자 괜한 짜증을 부린다. ¨자꾸(지퍼) 내리고 천천히 입어야지. 짜증 내지 말고.¨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인이가 환이에게 한 말이다. 13개월 터울의 연년생 동생에게 누나 인이가 한 말이다. ¨누나가 해주까?¨ 인이는 환이에게 저 자신을 지칭할 때 꼭 ``내``가 아니고 ``누나``라고 말한다. 우습지도 않다. 누나 덕에 예쁜 치마를 입은 환이도 내게 다가와 제 가슴을 톡톡 치며 ¨에에에 에에에? (엄마! 환이 예뻐?)¨ 한다. ¨우리 아들 치마 입으니까 최고!¨ 이번에도 연방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녀석들은 신이 나서 서로 껴안으며 남매의 도타운 정을 나눈다. 불과 5분 뒤에 습관처럼 싸울지언정 말이다. 인이가 딸이고 환이가 아들이다 보니 옷을 살 때 두 녀석이 같이 입을 수 있는 것을 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유난히 예쁜 옷에 관심이 많은 인이 욕심을 다 채워줄 수 없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녀석들이라 철 따라 새 옷을 사 입히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여기 저기서 물려받은 옷이 대부분이고 새 옷이라곤 주로 누가 선물로 사다 준 것들이다. 근데 여름이 되면서 하루에도 몇 벌씩 옷을 갈아입는 두 녀석 때문에 옷이 좀 모자란다 싶었다. 새 옷을 사줘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두 딸을 키우는 진이 엄마가 얻어 온 옷이 많다며 인이에게 몇 벌 주겠단다. 사실 나는 새 옷 사오는 사람보다 헌 옷 갖다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 우리 아이들 주겠다며 정갈하게 빨아 내 손에 건네주는 그 마음이 값지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 옷이나 신발같이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서로 바꿔 쓰는 가까운 이웃들이 내게는 참 소중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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