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광활한 우주 가운데서 이 땅의 지구에 두발을 굳건히 딛고서 초롱한 눈으로 온갖 만물을 마음껏 바라보며 가슴 시원한 하늘의 맑은 기운을 듬뿍 마시고 활발히 활동하며 삶을 성실히 구현할 수 있는 그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
 나의 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나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구체적인 물질적 육신인 이 몸이 있기 때문이다.
 무형의 정신을 담는 유형의 그릇인 이 몸이 있기 때문이다. 물이 보존되려면 그릇이 있어야 하듯이….
 그럼 이 몸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 그것은 나의 부모, 그리고 조부, 조모 그리고 더 거슬러 계속 올라가서 그 근원이고 총체적이고 최종적인 개념인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칫 주변종교에서 자기종교의 최종적이고 근본근원인 절대존재를 강조하고 인식시키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의 존재근원인 조상을 구체적으로 흠모하고 숭앙하는 민족고유의 제사의식을 비하하고 폄하하며, 민족고유의 전통과 가치, 그리고 그 권위를 깨뜨려서 민족의 정서를 흐트리고, 가족혈연간의 갈등을 일으키면서까지 자신들의 종교적 최종 근원을 인식시키려는 오류와 혼란을 범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릇이 없이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나의 유형의 이 몸이 없다면 나의 무형의 정신도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정신의 극점인 절대의 존재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유형이 있기 때문에 무형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육이 있기 때문에 영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물질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정신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대립되고 우열과 차별이 있는 개념이 아니다. 최소한 인간세계인 이 땅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상호 결합되고 상호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이 몸이 있기에 내가 이 땅의 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부모와 조상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멀리 흩어져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로 모여든다.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로 모여드는 것은 한 부모 한 조상 아래 모두다 한 자손이라는 동질의 가치가 근거되어 자리를 함께 하게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에게는 따뜻한 한줄기의 핏줄이 면면히 이어져 흐르고 있고 따뜻한 가슴의 뜨거운 정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흐뭇한 자리에서 우리모두가 한 부모 한조상아래 모두가 똑같은 한 자손이라는 구체적인 표현과 확인이 명절날 차례의식을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 자신들이 이 땅에 이렇게 굳건히 존재하여 살 수 있도록 이 육신적 근거를 마련하여주신 부모와 조상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서로서로 동질의 정을 나누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차례나 제사가 일상의 생활에서 일반의 서민들에게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상한 생각과 따뜻한 마음이 발판이 되고 승화되면 한 가족이라는 동질 감이 확대되어 한집안 한문중 한민족 한겨례, 나아가 한 인류라는 한 생명이라는 종교적 최종개념으로 발전되는 시발인 것이다.
 종교의 진정한 역할은 자칫 가까운 자신주변의 동질개념에 머무는 범부들의 좁은 의식을 전인류적으로 전체생명적으로 확대시켜주고 확장시켜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범인들이 생각하는 좁은 범위의 동질개념부터 수용하고 인정하며 드넓고 높은 동질의 개념으로 끌어올린다면 종교에서 추구하는 모든 만물이 하나의 존재아래 동질의 존재들이라는 최종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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