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유형은 정말 다양하다. 농사를 시작한 나이, 작목도 그렇다. 물론 소득 수준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오로지 생업으로 알고 잔뼈가 굵은 토착농가부터 도시물 좀 먹다가 중년에 귀농한 사람, 귀촌도 아니고 귀농도 아닌 어중간한 규모의 농토를 벌고 있는 사람도 있다. 농사를 대표적인 식량 작목인 쌀과 보리를 재배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이름도 생소한 아열대과일까지 재배하는 농가도 많다.

지난해 해남에서 연간 소득이 1억 원 이상인 부농이 753농가로 전남에서 가장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도내의 12.3%를 차지하며 지난해보다 33농가가 늘어나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고 한다. 식량작물이 339농가로 가장 많고 축산 209농가, 채소 112농가, 가공·유통 75농가 등의 순이다. 지난해보다 가공·유통이 21농가 증가했다는 사실에서 이제 농가들이 농작물 재배에 그치지 않고 생산한 농작물을 가공·유통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논에서 벼와 보리를 이모작으로 재배해 공판이라 하는 농협수매를 통해 어른들이 현장에서 돈을 만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락 가마니를 푹푹 찔러 직접 깨물어 보면서 건조상태와 낟알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등급을 매겼다. 그 등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등외도 있어 퇴짜를 맞기도 한다. 그래도 등급이 결정된 가마니 숫자에 따라 지급된 수매가를 손에 들고 농협창고 인근 마을구판장에서 걸판진 막걸리 판을 벌이는 모습도 보았다. 서운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나락 가마니는 마을을 돌아다니는 나락차에 헐값으로 넘기고 가용으로 보탰다. 이때는 홍보나 마케팅이 필요 없었다. 그저 잘 짓고 잘 말리면 된다.

이제는 벼농사도 판매 방법이 다양하다. 마르지 않은 벼를 팔기도 한다. 콤바인으로 수확하자마자 톤 백에 담아 그대로 판매한다. 건조기에 벼를 넣어 건조 후에 판매하거나 정미소에서 빻아 쌀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 쌀을 가공한 누룽지와 같은 제조식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고추도 생고추나 건조한 홍고추를 판매하거나 고춧가루를 판매한다.

해남군농업기술센터의 강소농 마케팅교육에 참가한 농민들의 연령대와 작목도 다양하다. 한결같은 것은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직접 홍보하고 판매하겠다는 의욕이 앞선다. 젊은 귀농인들과 함께 중년의 농부들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를 배운다. 젊은이들은 마케팅 차원에서 자신 있게 농장의 명함을 내밀지만 중년들은 아직 농장 이름도 못 지었다고 한다.

마케팅에서 '네이밍'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냥 쉽게 얘기해서 작명이다. 이제 농장 이름을 짓는 것도, 농작물 가공품 이름을 짓는 것도 마케팅기법을 활용한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짓거나 아들 이름을 농장 이름으로 쉽게 짓는 것보다 며칠간 고민하고 고민한다. 그만큼 '네이밍'이 홍보마케팅의 시작이자 성패를 좌우한다.

당당하게 자신의 성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문장으로 상호를 짓거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영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패러디한 이름도 많고 '네이밍' 자체로 호감을 얻기도 한다. 가공 김 포장지에 '잘생김'이라는 상호와 귤 상자에 '귤로장생'이라는 상호를 보면서 젊은 층의 '신박하다'라는 신조어가 떠오른다.

이제 농사와 마케팅이 별개의 개념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해남의 농장과 농산물이 검색사이트를 가득 채웠으면 한다. 이름부터 멋진 스타팜이 해남의 경제를 견인할 날도 머지않았다. 해남군도 농가들의 홍보마케팅교육을 강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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