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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70주년 해남등대원… 1000명의 삶에 빛을 비추다'하나님·이웃·농촌'의 삼애정신 실천한 현장
등대원 출신은 자부심 갖고 시설 자주 방문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는 후원금으로 충당
현재 51명 생활… 가정 학대 받은 아이 많아
양동원 기자  |  dwyang9@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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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13  15: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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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생활하는 숙소동에서 유정미 생활지도원, 이성용 대표, 박자원 원장. (왼쪽부터)
   
▲ 지난 6일 창립 70주년 행사에서 등대원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중순께 해남등대원에는 40대 엄마가 자녀 셋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타지에서 사는 엄마는 유아 때 등대원에 들어와 고등학교를 거쳐 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은 가정을 갖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다. 아이 엄마가 등대원을 찾은 데는 사연이 있다. 중학생이 된 아들이 "우리는 왜 외갓집이 없어요"라고 묻자 등대원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이날 가족과 함께 찾은 것이다. 해남등대원에서 자라 사회에 진출한 사람은 자신이 등대원 출신이라는 걸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국전쟁 당시 고아 등을 보살피기 위해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해남등대원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지난 6일 등대원 문화공간에서 열린 개원 70주년 기념행사는 외부 인사 초청 없이 직원과 이사, 등대원 출신 인사들만 참석해 예배로 진행됐다.

이날 예배에서 등대원 출신인 오영석(80·전 한신대 총장) 목사가 설교를 맡았다. 오 목사가 등대원에 들어온 과정은 지금도 회자된다. 워낙 어려운 가정 형편에 중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에서 '하나님, 공부 좀 하게 해주세요'라고 울면서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가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무작정 쓰고 보낼 데가 없어 '하나님 전상서'라는 주소로 우체통에 넣었다. 이 편지는 우체국장을 거쳐 당시 해남읍교회 이준묵(해남등대원 설립자) 목사에게 보내졌다. 이 목사는 수소문 끝에 계곡에 사는 편지 주인공을 찾아내 등대원에 입소시키고 공부에 전념하도록 했다.

해남등대원은 아동양육시설이다. 대학을 마치고 사회 진출까지 뒷바라지한다. 이곳에서 자라 어엿한 사회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1000명에 이른다. 지금은 미취학 아동에서부터 초·중·고·대학생과 직업훈련생 등 51명의 보금자리이다. 18세가 되면 퇴소해야 하지만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학생은 25세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이들을 돌보는 직원도 29명에 이른다.

운영비는 군과 도에서 각각 87%, 13%를 분담해 지원하지만 학원비, 대학생 생활비 등은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등대원 출신이나 이직한 직원들이 후원에 앞장서고 있다.

해남등대원의 역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남과 연고가 전혀 없던 이준묵 목사 부부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초 해남으로 내려와 1951년부터 아이들을 2년 정도 돌보다가 1953년 3월 해남등대원을 개원하게 됐다. 당시에는 전쟁 고아가 주변에 널려 있던 혼란의 시대이다.

이준묵 목사는 해남YMCA와 유치원, 교회신협 등의 설립을 주도한 사회운동의 거목이다, 이런 바탕에는 삼애정신(애신, 애린, 애토)이 자리 잡고 있다. 영적인 삶(愛神)과 사회공동체(愛隣), 그리고 경제활동(愛土)이 삼애이다. 등대원의 이름도 성경 말씀에 따라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의 빛이 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준묵 목사의 유일한 형(이문환)은 호남비료공장과 아세아자동차를 설립한 당대의 사업가였다. 덴마크에 농촌부흥을 이끈 그룬투비가 있다면 우리나라, 그리고 해남에는 이준묵 목사가 있었다.

이준묵 목사의 이러한 뜻은 장남인 이성용(82) 해남등대원 대표이사가 물려받았다. 이 대표는 광주일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사업국장을 하다가 선친의 뜻을 받들어 1991년부터 부원장으로 사실상 실무를 총괄했다. 부친이 타계한 2000년 이사장과 원장을 이어받아 지금은 사회복지법인 해남등대원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 대표의 등대원 운영 철학은 아이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인격체로 존중받고 마음의 치유를 받는 것이다. 지금 등대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주로 가정에서 학대를 받는 경우이다.

이 대표는 "등대원에 몸담은 90년대 어느 날 터미널에서 정신지체로 보이는 초등학생을 파출소 경찰이 데리고 왔는데 가정환경이 워낙 좋지 않아 어린 마음에 등대원에 들어오고자 쇼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더 나은 등대원을 위해 사회복지사(1급), 원예치료사, 모래놀이치료사, 심리상담사, 부부상담사 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제대로 된 언론과 지역사회 공론장의 소신을 갖고 해남신문 대표(2002~2005년)와 해남YMCA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해남등대원 박자원 원장은 "등대원 출신들은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결혼 후에도 자주 찾아온다"면서 "지난해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어려울 때 의논 상대로 등대원 직원을 꼽았을 정도로 신뢰 관계가 높다"고 말했다.

이성용 대표는 등대원의 방향에 대해 "국가에서 아동시설을 점차 축소하고 있는 추세"라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버림받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 심리치료에 중점을 두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등대원은 당초 성동리 회관 인근에 위치했으나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전 과정에서 일화가 있다. 70년대 지금의 자리는 해남읍의 눈썹이라고 할 정도로 소나무로 우거지고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근데 산 주인이 군의 허가를 받아 벌목을 하려고 하자 이 대표의 선친이 막았다고 했다. 이후 이 대표의 24만원으로 3000평을 매입했다.

해남등대원은 '작은 천국'을 지향한다. 가정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이 사회의 일원으로 올곧게 나아가기 위한 빛의 통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짊어질 책무를 70년간 묵묵히 맡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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