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선거판 흔드는 무자격조합원
② 깨끗한 선거 원년의 과제
③ 위탁선거법 개정이 시대적 소명
④ '빈 수레' 경제사업 조합원 우선돼야
⑤ 지역조합 품앗이 채용 문제

▲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화산면과 옥천면에 출마예정자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화산면과 옥천면에 출마예정자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협동조합 조합장이 뭐길래

본래 조합장 선거는 조합별 사정에 맞춰 알아서 치러졌다. 그렇지만 유권자인 조합원이 조합별로 2000명 안팎에 불과하고 혈연, 학연, 지연으로 묶여있어 금품과 향응 등 돈 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2005년부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조합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게 됐고 이후 2014년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15년부터 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국적으로 동시에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2015년, 2019년에 이어 오는 3월 8일에 세 번째 동시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해남에서는 지역농협 11곳을 비롯해 수협, 축협, 산림조합 등 14개 조합에서 조합장을 선출한다. 지금까지 14곳의 선거구에 출마예정자는 39명으로 평균 2.8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조합장은 4년 동안 해당 조합의 대표로서 업무 집행권과 직원 임면권을 갖는다. 예금과 대출 등 신용사업과 생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을 주도하며 조합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조합마다 다소 다르지만 연봉은 성과급까지 합쳐서 8000만 원에서 1억 원 사이로 알려져 있고 업무추진비와 판공비가 있는 상황이다.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이다 보니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하고, 공직선거보다 소수의 선거인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어서 금품이나 향응 제공 등 불법 선거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3회 선거에서도 설 연휴를 전후해 명절 인사를 핑계로 돈 봉투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거비 2500만원… 실제 수억 원

조합장 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며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누구는 몇 억을 썼네, 누구는 몇 억을 쓰고도 떨어졌네'라는 말들이 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의 얘기이겠지만 이런 소문이 공공연히 퍼진다.

액면 그대로만 놓고 보면 조합장 선거와 관련한 선거비용은 1500만원에서 2500만원이면 충분하다. 조합장 선거는 공직선거법이 아닌 위탁선거법 적용을 받아 선거사무소 설치도 안 되고 선거운동원 없이 오로지 본인만 선거운동을 해야 하며 선거 차량도 허용되지 않는다.

일단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자는 해당 조합에서 정한 대로 적게는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그래야 임원(조합장) 출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기탁금이 모두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 결과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 돌려받고, 10% 이상 득표하면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다.

기탁금 외에 출마예정자는 자신을 알리고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선거공보물, 명함, 현수막 제작과 문자메시지, 사진 촬영 등의 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류비에 언론사를 통한 의례적인 명절 인사 광고비를 합쳐도 1200만~1500만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후보가 기탁금 1000만 원을 내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선거운동으로 1500만 원을 썼다고 하면 2500만 원의 선거비용이 들어가야 맞다.

그런데 몇 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른바 다른 곳에 불법,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밥과 술을 사고 돈 봉투가 오갔다는 얘기이다.

이번 선거에서 출마를 준비했다 뜻을 접은 A 씨는 "깨끗한 선거, 돈 안 들이는 선거를 준비했는데 다른 후보들은 그렇지 않고 일부 유권자들도 그런 생각이 부족한 것으로 보여 이대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뜻을 접었다"며 "이상과 현실의 차이였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고발과 수사

 
 

처음 조합장 선거에 나선 B 씨는 "지인들로부터 조합장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 돈 있냐', '돈 많이 들 텐데', '돈 쓸 때 조심해라'였다"고 말했다.

해남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 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와 관련해 해남에서는 1회 때 4건, 2회 때 7건이 적발돼 고발이나 수사의뢰, 경고 등의 조치를 받았다. 이 중 기부행위(금품과 향응)와 관련된 것이 1회 때 1건, 2회 때는 무려 5건에 달했다.

지난 2회 계곡농협 조합장 선거에서는 출마를 준비했던 C 씨가 유권자에게 1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고발됐다. C 씨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이후 재판을 통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화산농협 조합장 선거에서는 현 조합장이 유권자 2명에게 지지를 부탁하며 돈을 건넨 혐의로 고발됐다. 이후 1심 선고공판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데 항소심 결과는 2월 초에나 나올 예정이다. 해당 조합장은 유권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명함을 건넸을 뿐이라거나 모르는 일이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종 확정판결이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재판만 3년 넘게 진행되고 사실상 임기까지 채운 상황이어서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관위에서 조치한 사례 외에도 확인되지 않았거나, 모두가 쉬쉬하며 그냥 넘어간 사례까지 실제 돈 선거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2회 때 선거 분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지인이 후보 3명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알려와 나는 왜 한 명도 안 왔을까 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며 "일단 되고 보자는 식으로 돈 봉투가 뿌려졌고 유권자들도 일단 받고 보자는 식으로 은근히 바라는 상황에서 돈 선거가 심했다"고 말했다.

돈 안드는 성숙한 선거문화 필요

또 다른 조합원은 "선거 브로커도 문제인데 잘하면 당선된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부추겨 선거에 나오게 해 판을 키운다"며 "선거에 개입해 후보자가 당선되면 당선사례금을 요구하고 떨어지면 돈을 빌려달라고 해 갚지 않는 방법으로 선거판을 흐리게 하고 후보자들도 불법이 드러날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돈으로 당선된 조합장은 다음에 어떻게 할까? 쓴 만큼 벌어들여야 하니 조합 곳간은 비게 되고 비리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돈 선거는 조합원에게 조합 부실이나 조합 비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후보자는 물론 조합원도 깨끗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와 협조가 필요하다. 금품이나 정에 이끌려 투표를 하기보다는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한다. 안 주고 안 받는 성숙한 선거문화에 조합장 선거도 정책선거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 등이 나서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깨끗한 선거에 동참한다는 의미의 서명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 현행 위탁선거법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운동 방식도 너무 제한적이고 기간도 짧고 후보토론회도 없다 보니 신인들의 경우 자신을 알릴 방법이 쉽지 않은 '깜깜이 선거'가 되고 있다. 결국 이는 불법 선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 돈 안 드는 정책선거를 위해서는 말뿐이 아닌 제도적인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에 처음 조합장 선거에 나온 D 씨는 이렇게 약속했다. "당락을 떠나 일기나 메모 형태로 날마다 얼마의 비용이 들어갔는지 기록해볼 생각이다. 돈 안 드는 선거를 정말 했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나중에 모두와 공유했으면 한다. 깨끗한 선거를 위해 후보자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조형민(해남군선관위 지도계장)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이나 음식물 등을 제공받은 사람에게는 최고 3000만 원의 범위에서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자수한 사람에게는 과태료가 감면된다. 위법행위 신고자에게는 최고 3억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는 우리 조합원들의 몫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관심과 신고, 제보를 통해 해남이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조합장선거를 치렀다는 모범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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