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인지도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정치 신인에게 인지도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고 기성 정치인도 유권자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있다. 언론에 '본인 부음'만 빼고 어떠한 기사라도 내비치면 나쁠 게 없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을 새겨 끊임없이 얼굴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기억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지만 인지도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돈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돈으로 표나 정당 공천을 매수하는 일은 허다하다. 돈거래는 은밀히 이뤄질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단편적이나마 세상에 드러나고 입에 오르내리는 속성을 갖는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얘기가 있다. 광주의 한 구청장은 사석에서 연임을 포기한 속내를 털어놨다. 당시 지구당위원장(현역 국회의원)은 공천 대가로 6억 원 정도를 요구했다. 그때만 해도 단체장 공천은 경선 절차가 있더라도 국회의원이 좌지우지하던 시절이다. '공천=당선'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공천 대가로 거액을 스스럼없이 요구한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4년의 임기 중 받을 봉급이 4억 원인데 그 정도만 요구했다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응했을 것이다." 공천은 더 많은 금액을 베팅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정치, 그것도 표를 구하는 선거가 반드시 '돈 먹는 하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광주에서 30년간 선거 때만 되면 얼굴을 내민 후보가 있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청장 등 19번의 선거에 나서 단 한 번(시의원) 당선됐으나 그것도 1년 만에 사퇴하고 이듬해 또 다른 선거에 도전했다. 그는 줄곧 무소속만 고집했다. 공천 대가로 돈을 쓸 이유도 없고, 유세에도 최소 비용만 지출했다. 그의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선거에 나가면 주위에서 후원한다. 선거비용을 최대로 줄이다 보면 오히려 남는 장사이다."

'누굴 뽑는' 선거는 비단 정치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선거가 반드시 투표라는 행위를 수반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경쟁자보다 많은 득표를 해야 하는 선거에서는 돈의 유혹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작년 한 해는 가히 선거의 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를 거쳐 세밑에 마을별로 일제히 치러진 이장 선거가 대미를 장식했다. 이장 선거의 바통을 받아 새해 벽두 해남의 14개 읍면별 이장단장이 선출됐다. 어느 이장단 선거에서는 돈이 오갔다는 얘기가 끝임없이 흘러나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싶기도 하다.

덩치가 더 큰 또 다른 선거가 바짝 다가왔다. 오는 3월 8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조합장 선거이다. 해남에서는 지역농협 11곳과 수협, 축협, 산림조합 등 14개 조합에서 임기 4년의 조합장을 뽑게 된다. 현재 39명의 예비후보가 거론되고 있으니 평균 2.8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셈이다.

그런데 벌써 향응, 선물제공과 물밑에서 돈이 오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돈 선거'를 막아보자며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관리한 지 3회째를 맞지만 약효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해남은 유난히 돈 선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돈 몇 푼 받고 소중한 한 표를 던져버리면 더 큰 손해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터인데…. 후보자도, 유권자인 조합원도 '뭣이 중한디'를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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