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희(미래유산문화포럼 대표, 전 경기대 교수)

 
 

필자는 새 학기만 되면, 첫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전남 해남 땅끝인 송지면 가차리(송암마을) 158번지에서 자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와서…"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교수님! 그럼 '침미다례'가 고향이시군요?"라고 말한다.

나는 경영학 교수라 '침미다례'가 뭣인지 몰랐다. 그래서 "뭐야? 난 '침미다례'를 몰라.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고향은 다래(달래)가 참 많았어! 누나가 캐와서 나물 반찬으로 먹은 기억이 나지." 그러자 학생들은 웃으며, "교수님! 그게 아니고, 해남·강진을 '침미다례'라고 해서 일본이 세운 작은 나라라고 배웠어요." "아이쿠, 그렇구나!", "알아야 송지면장도 한다."는 어렸을 적 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역사 교수가 아니라서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살던 고향이 왜(倭)가 세운 '임나일본부'인 '침미다례'라고 하니, 이를 어찌해야 좋을까? 대책이 없어 도서관에 가봐도 별로 흡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또 몇 년이 지난 얼마 전, 전라도 '1000년사(아니, 5000년사)'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전라도 천년사' 봉정식(2022년 12월 20일)을 앞두고 출간을 연기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왜 그랬을까? 24억 원을 들여 213명의 학자가 총 34권의 방대한 책을 만들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어 그랬을까? 만약 이 책이 출간되지 못한다면, 전라도 주민들의 피 같은 세금만 탕진한 것이 아닌가! 무엇이 문제인가? 수년 전 "해남이 '침미다례'라고 말했던, 학생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침미다례'란 무엇인가? 찾아보니, 우리나라 역사책(김부식의 '삼국사',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그러한 지명이나 국명이 없다. 알고 보니 일본서기(日本書紀·누가 썼는지도 언제 썼는지도 잘 모르는 조잡한 일본 역사책)에 나오는 일본열도에 속하는 하나의 소국(小國)이 '침미다례'라고 한다.

이 '침미다례'를 해남·강진이라고 처음 비정(추정)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스에마쓰 야쓰카스(末松保和)'이다. 이것을 한국 213명의 역사학자가 추종하여 '전라도 천년사'에 아무 생각없이(?) 기록했단 말인가! "아! 부끄럽다. 아! 서글프다." '침미다례'는 일본 큐슈지방(아소산 근처)에 있는 '우치카와(內川)'란 것도 모르고, 나의 고향 해남을 '침미다례'라고 하여 왜놈의 땅이 되어 버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보면, "해남이 없었다면, '침미다례'만 있었을 것이다(?)."라고, 저 '친일 추종 매국 사학자 213명'에게 부고장을 보내고 싶다. 왜? 우리나라 아니, 한국 역사 교수들만 '일본서기'에 목매어 헤어나오지 못할까? 왜? 다른 역사책은 보지 않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진정 몰라서일까? 아니면 왜놈(?)의 거시기(?)에 목이 묶였단 말인가!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다.

남원을 왜의 '기문국'으로 둔갑시키고, 장수를 '반파' 추정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해남·강진·완도까지 '침미다례'라고 우기고 있다. 아니 해남·강진·완도 사람을 왜놈의 식민 백성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에 서글픔까지 엄습해 온다. '일본서기'에 '남만(남쪽 오랑캐)이 침미다례'라고 써있는 것도 정말 안 보여서일까? 내가 살던 고향은 '남쪽 오랑캐'가 아니라고 강조해도, 우리 해남은 왜놈의 후손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들려오는 소리는 어제도 오늘도 나의 고향 집에는 "꼭 깨요!"라고 어미 닭이 울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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