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사회에 내려오는 고전(古典)이 있다. '기자는 세 부류가 있다. 먹고 쓰는 놈, 먹고 안 쓴 놈, 못 먹고 못 쓴 놈.' 여기서 '먹고'의 대상은 입막음용 촌지이다. A급은 촌지를 받고도 쓸 거 다 쓰는 기자이고, B급은 촌지를 받으면 정작 써야 할 기사에 눈 감는 기자이다. C급은 정보를 캐내지도 못해 쓸 게 없는 무능한 기자이다. 여기에는 '안 먹고 쓰는' 특A급 기자가 안 보인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고전이지만 이런 기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자기(기자 사회) 검열을 은연중 실토하고 있다.

'작은 뜻이나 성의'로 풀이되는 촌지(寸志)는 흔히 취재원이 기자에게, 학부모가 교사에게 건네는 돈을 의미한다. 돈 봉투에 '寸志'라고 당당하게 써서 주던 시절도 있었다. 기자 사회에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뒤돌아서서 지폐를 일일이 세어본 후 촌지를 주고,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양복에서 지갑을 꺼내 통째 줬다는 일화이다. 어느 정치인에게 더 호감이 갈지 불문가지이다. 세상에는 공짜점심이 없다는데 하물며 뇌물인 촌지에 대가성이 없을 리 만무하다.

예전 한국 사회의 3대 개혁 대상이 있다. 언론, 교육, 검찰이다. 여기서 언론은 여전히 개혁의 지진아로 남아있다. 언론계의 촌지 문화는 사회가 투명해지고 김영란법으로 물밑으로 내려갔다지만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행태는 오히려 그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기자는 글로 말하는 직업이다, 그 글은 반드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그래서 '팩트에 살고 팩트에 죽는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는다. 이런데도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팩트체크'라는 코너는 달리 보면 언론인에게 크나큰 자괴감을 던져준다. 가장 기본이 되는 팩트가 내팽개쳐지다 보니 팩트 체크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기레기(기자와 쓰레기 합성어)'라는 조롱 섞인 비난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기자라는 직업의 생명은 '사실 보도'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깔려있다. 어떤 '사실'에는 반드시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기자는 진실에 접근해야 비로소 참된 보도를 할 수 있다. 80년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보자. 국내 많은 언론은 피상적인 '사실'을 앞세운 채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폭동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신군부의 검열이라는 외압에 막혔다지만 '왜'라는 진실에 눈을 감았다. 이게 사실과 진실의 차이이다. 그래서 언론은 '사실 보도'의 단계를 넘어 '진실 보도'를 지향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사실 보도를 전가의 보도인 양 내세워 가짜뉴스와 왜곡·조작보도를 일삼는다. 이를 바로잡는 게 진정한 언론개혁이다.

언론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핵폭탄급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시민주로 출발해 신뢰를 생명으로 삼아온 한겨레신문의 편집국 간부가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김만배(기자 출신)로부터 9억 원을 수표로 받았다고 한다. 빌렸다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간부도 1억9000만 원, 1억 원의 돈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억"이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땅끝 해남에서 바라본다. 이게 어디 저 멀리 수도권에서만 벌어진 일일까. 비단 돈이 오가는 커넥션은 아닐지라도 조그만 지역사회에 유사한 독버섯이 자라지나 않을까. 그리고 저 한 켠에선 진실을 헌신짝으로 취급하지나 않을까. 그렇다면 사이비(似而非) 언론이다. 사이비 언론의 방점은 사이비에 있다. 고로 사이비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짝퉁도 못 된다. 다시금 언론의 정도(正道)를 되새기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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