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새해 설계도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했다. 작심삼일도 삼일 만에 한 번씩 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 몰라도 작심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꼰대질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본의 아니게 '꼰대'가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는 일이 허다하다. 아직 청춘이고 성향 또한 진보라고 자부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꼭 그러지 않으니 새해만이라도 작심하고 또 작심한 것이다. 습관처럼 타인과의 대화에서 '나와 저'라는 주어가 눈에 거슬린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나'라는 주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랫사람과 대화할 때다. 아랫사람들이 모인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것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손아랫사람이 '나' 대신 '저'를 사용해 주기를 바란다면 '꼰대'가 분명하다.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꼰대들을 향해 젊은이들이 커피 라떼를 빗대 '나때'라는 음어를 쓴 지 오래다. 그렇다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저 때는 말입니다'라고는 할 수 없으니 '저때'라는 커피 메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우면서 가장 힘든 것이 존칭어라고 알려졌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 10인과 한국 스타 5인이 펼치는 예측불허 퀴즈 프로그램인 '대한외국인'을 보노라면 그 어렵다는 존칭어도 극복한 것 같아 대견하다.

손주 녀석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한테도 아주낮춤 격식체인 '해라체'로 하다가 부모의 지적을 받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이때 굳이 '우리 손주는 미쿡에서 왔나보구나'라고 표현해 부모를 놀라게 한다면 꼰대가 분명하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지 한두 달 만에 존칭어를 배우는 것도 우리말과 우리 교육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편으로 오는 연하장도 거의 사라졌다. SNS로 주고받는 세상이다. 한때 우편봉투의 수신자 존칭어에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귀하'라고 인쇄됐는데 이름 뒤에 '님'을 붙일까 말까. 그러다 보니 선생님 귀하, 사장님 귀하까지 등장했다. 지방지에 근무할 때와 서울에 본사를 둔 전국지에 근무할 때의 큰 차이점은 호칭어였다. '오 선배님'이라는 깍듯한 호칭 대신 서울의 후배들은 '오 선배'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지방에서 왔다고 무시하냐 싶었다. 선배라는 호칭에 이미 존칭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때 '축하드립니다' 대신 맞춤법을 주장하며 '축하합니다'를 쓰면 눈총을 받았다. 다행히 이제 '축하드립니다'도 '자장면'과 '짜장면'처럼 함께 써도 된다는 것이니 연말 승진, 수상 축하 현수막을 뚫어져라 보던 꼰대의 헛수고도 사라졌다.

2005년에 한국 사회에서의 호칭어의 역할과 의미를 연구한 책인 '한국 사회와 호칭어'가 출판된 것도 호칭이나 존칭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짐은…'이 군부독재시대 '본인은…'으로 변했다. 혹여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나는…'이라고 표현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면 이 또한 '꼰대'의 특징일 것이다.

우리말의 서술어 마침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한다. 아주 높임말인 극존칭과 아주 낮춤인 최비칭 사이에 보통 존칭, 반어, 보통 비칭이 있다. 가끔 극존칭을 구사하면서 상대방의 사물에까지 극존칭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라는 뜻으로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무례한 태도가 됨을 뜻하는 말인 과공비례(過恭非禮)의 사례다. 그만큼 존칭어 사용이 대한 외국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인도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도 선배님보다 선배 앞에서, 국민들에게 '나보다는 저'를 사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마지막 꼰대질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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