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선(건국대 교수)

 
 

2022년 한 해가 저물었다. 오래전부터 한해를 마감할 즈음에 그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는 '교수신문'은 2022년을 '과이불개(過而不改)'로 정했다.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과이불개'는 똑같은 잘못이 반복되는 현실,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과이불개'라는 말을 통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 속의 사건들과 연결해서 생각할 것이다.

해남신문에서 뽑은 2022년 10대 뉴스에 '쌀값 폭락과 영농비 폭등'이 1위로 올라왔다. 산지 쌀값이 1년 동안 25%나 폭락했는데도, 밥상물가를 잡겠다고 농산물가격을 원흉으로 지목한 것도 그렇고, 산지의 농산물가격 폭락이 매년 되풀이되는 현실도 '과이불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2022년이 아쉬움만으로 기억될 일은 아닐 것 같다. 지역에 발을 딛고 지역의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농업·농촌의 위기와 먹거리 위기를 극복하고자 진행해 온 노력이 해남에서 결실을 보기 시작했고, 작년 11월 해남군이 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한 전국 지자체 먹거리 지수평가등급 A를 받았다는 점이다. 가까이 있는 지자체뿐만 아니라, 경남에 있는 여러 지자체가 해남을 선진지 견학처로 방문하고 있다. 이들은 로컬푸드 직매장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개장했다는 점에 놀라고, 단기간 로컬푸드 30억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던 해남의 내공에도 놀란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표 농군(農郡) 해남은 한국의 먹거리를 비중 있게 책임지는 자랑스러운 곳이기에 항상 외부유통에 모두가 집중해 왔다. 그러는 사이에 규모화 농정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특정품목의 가격등락이 거듭되는 고통을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규모화 농정의 이면에 여전히 소규모 농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책대상에서는 소외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친환경농산물을 비롯한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하여 서울 등 다른 지역에 학교급식과 생협 등에 공급하면서도 정작 지역의 학교급식이나 공공급식에는 타 지역산 농산물이 그 역할을 대신했고, 해남군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정작 해남의 시장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잘못된 악순환을 고치려는 시도가 해남에서 일찌감치 시작된 것은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먼 곳의 사람들이 온다(近者悅 遠者來)'라는 공자님 말씀대로 타지의 시장도 시장이지만, 해남의 어린이를 포함한 군민 모두가 행복한 밥상 만드는 일이 협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2021년에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여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 해남산 식재료의 공급을 확대하고, 로컬푸드 직매장을 개장하는 등 숨 가쁘게 달려왔다. 로컬푸드 생산자협의회는 지역의 취약계층에게 김치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활동까지 전개하고 있다.

새해 2023년은 해남군 인근 도시의 로컬푸드 직매장들과 제휴해서 해남 로컬푸드가 출점하는 외부유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더욱 많은 농가가 참여할 수 있으면서 소비자들이 더 안심할 수 있는 로컬푸드 인증제도를 정착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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