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코로나19, 전쟁, 기후위기는 1990년대부터 세계 경제 질서의 기본 축을 담당하던 세계무역기구(WTO)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종말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WTO 신자유주의가 외치던 "상품 팔아 싼 식량을 사다 먹으면 된다"던 핵심 논리가 붕괴되면서 식량 위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식량 위기는 각국이 농업 지속성을 높여줄 농정으로 전환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제정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섹션 22006에 의거해 미 농무부(USDA)가 진행한 대출 및 보증 융자 그리고 농업 운영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을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31억 달러(4조486억 원)의 농가부채 탕감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솔직히 충격적이다. 미국 농무부(USDA)가 설명하는 이런 지원의 이유는 더욱 그러하다.

"더 빈번하고 더 강력하며, 기후에 따른 자연재해로 인해 악화된 전염병에 의한 시장 혼란으로 큰 타격을 입은 농민을 포함한 많은 농민에게 이러한 지원은 농촌 지역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복지에 필수적인 식량, 섬유 및 연료의 계속 생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현대, 기아 전기차 보조금 미지원 문제로 매일 언론에 나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법인세를 높이는 등 세금을 증액해 7370억 달러(한화 857조원)를 거둬들이고 향후 10년 동안 4370억 달러(한화 563조 원)를 의료비 지원과 기후위기 대응 예산으로 사용한다는 법률인데 여기에 농업 지속을 위한 예산이 포함된 것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생산비는 3배 이상, 금융 이자는 전년대비 2~3배 이상으로 폭등해서 연말 마이너스 결산을 하게 생긴 마당에 미국의 농가부채 탕감 소식은 한국 농민인 나에겐 너무도 놀랍다.

특히 지난해 해남 농민들이 가장 많이 생산하는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폭으로 가격이 폭락했고 배추는 거래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어려울지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농업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사회가 식량 또는 농업이라는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붕괴, 전쟁·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의 공급망 붕괴는 WTO 체계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러-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WTO 규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미국 중심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끝내는 시기로 가는 시계의 추를 더 빨리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2%에 불과하다. 선진국 그룹인 OECD 평균은 102.5%이다. 그리고 2022년 세계식량지수는 2020년 대비 150%가량이 올랐다. 세상의 흐름은 더 이상 한국사회가 식량을 수입에만 의존하기 어렵게 하고 있고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식량을 별거 아닌 걸로 인식하기엔 세상은 너무도 급히 변하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가 만나 유류 결제를 '위안화'로 하자는 의견을 나눴다는 기사를 봤다. 달러패권 즉, 미국 패권은 끝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 수있다. 그러면서 지난 30년간 미국 패권의 축이었던 WTO는 미국 우선 정책으로 미국이 스스로 붕괴시키고 있다. WTO를 붕괴시키는 법률에 식량과 에너지의 지속가능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반드시 세계적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2023년, 한국 사회가 식량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산소배출과 탄소흡수로 인류 생존의 문제인 기후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산업이면서 식량을 공급하는 농업, 농촌에 새 희망을 주는 2023년이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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