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양봉농가 텅 빈 벌통에 울상
작년보다 일찍 시작하고 피해 심해
응애 내성 커져 방제에도 속수무책
국가재난에 준하는 대책 마련 촉구

▲ 지난달 27일 마산면의 한 양봉농가. 월동 준비를 위해 가득 차 있어야 할 벌집에 꿀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지난달 27일 마산면의 한 양봉농가. 월동 준비를 위해 가득 차 있어야 할 벌집에 꿀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해남읍에서 양봉을 하는 A(78) 씨는 올해도 벌 농사를 망쳤다며 울상이다. 벌통 200통에서 꿀벌 대다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께 꿀벌들이 월동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벌통을 열었는데, 벌통에 가득해야 할 꿀벌이 온데간데 없고 죽은 응애만 쌓여있었다.

A 씨는 "지난해 꿀벌이 집단으로 폐사했고 정부에서 응애 때문이라고 해 올해는 방제에 특히 신경을 썼는데도 또다시 피해가 났다"며 "정부에서 보급한 방제약이 효능이 떨어져 응애 내성만 키운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황산면에서 양봉을 하고 있는 B(63) 씨도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 3월 정부 보조를 받아 벌을 입식해 벌통 200통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570통으로 늘려 희망에 부풀었는데 최근 응애 피해로 꿀벌이 사라지거나 폐사해 220통으로 줄었다. 게다가 계속 피해가 확산돼 월동 이후 내년 2월에 남아있는 꿀벌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B 씨는 "2년 동안 벌이 사라져 수입도 없고 빚만 남게 되는 상황으로 1년 동안 정부에서 실시한 원인 규명과 대책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고 말했다.

해남군양봉협회는 지난 겨울 81개 양봉농가에서 전체의 52%인 1만2000통에서 피해가 발생한데다 이번에는 피해가 더 심한 상태이며 이런 추세라면 전체 벌통의 70% 이상이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양봉농가들은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 집단폐사의 주된 원인을 응애 때문으로 분석하고 방제약으로 중국에서 수입한 특정 약품을 지원했지만 피해만 더 키운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진귀만 해남군양봉협회 부회장은 "해당 약품의 살충제 성분인 플루발리네이트 함유량이 다른 약품보다 적고, 그래서인지 다른 약품을 사용했을 때보다 효능도 크게 떨어졌다"며 "방제 초기에 잘못된 약품이 보급되면서 효능도 없고 내성만 키워 방제가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검역본부와 농촌진흥청은 허가를 받고 유통되고 있는 약품 대부분이 똑같은 함유량이며 응애 자체가 플루발리네이트 성분에 내성이 생긴 것으로 파악되지만 농가에서 적기 방제를 놓친 탓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기관 관계자들은 "농가들이 여름에 설탕을 벌에 먹여 키우는 사양 벌꿀을 생산할 때 제대로 방제를 하지 않았고, 적기 방제를 놓치며 이 약 저 약을 남용하다 보니 오히려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봉농가들은 모든 책임을 농가에 돌리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응애 피해 외에도 원인 모를 이유로 벌들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 규명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놓고 있다.

진귀만 부회장은 "양봉농가들의 참여가 보장된 원인 규명과 대체 약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며 이번 겨울에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와 해남군 차원에서 서둘러 피해실태조사와 함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꿀벌이 계속 사라지면 수정 벌도 없어져 당장 과수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국가재난에 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올해 꿀벌 집단폐사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지난해보다 일찍 시작했고 규모도 더 큰 것으로 전해지며 양봉농가와 한국양봉협회는 정부 차원의 신속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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