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이제 쓰레기를 버리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착한 실천을 넘어 반드시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필환경 시대가 온 것이다. 친환경기업이라는 용어도 필환경기업으로 바뀌었다.

30여 년 전 공중파 지방 방송국에 근무하는 PD 친구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일본으로 출장 가면서 주제가 '쓰레기 ZERO'라고 해서 의아한 적이 있다. 버리는 쓰레기를 제로화하는 일본인의 생활을 취재한다는 것이다. 그때 분리배출을 통한 재활용을 실천한다는 내용이다. 음식물쓰레기마저도 밑에 구멍이 뚫리고 뚜껑이 달린 그릇을 화단 구석에 두고 지렁이에게 분해를 맡긴다는 것이다. 음식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지혜다. 우리 농촌에서 잔밥과 음식물 찌꺼기는 개와 돼지의 사료로 활용하고 두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 시절에 다른 쓰레기는 부엌 아궁이를 통해 제로화했다. 비닐은 물론 불에 타는 모든 것이 난방이나 취사용 연료로 이용되는 것이다. 분리수거, 재활용과는 거리가 멀다.

매년 이맘때면 다음 해의 트렌드를 알려주는 책이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2019년 키워드인 '필환경'을 소개했다. 포장재의 획기적인 변화를 강조했던 것이다.

한 온라인 식재료 판매업체는 2018년 판매원가 중에 직원 급여로 74억 원, 포장비 지출은 177억 원에 달했다. 이에 이 업체는 소포장과 테이프 등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로 바꾸고 이것을 다음 배송 때 회수해 재활용하는 올 페이퍼 챌린지 계획을 발표했다 한다.

2020년 초부터 대형마트에서 포장재 테이프 제공을 중단했다. 비닐봉투를 제공하지 않고 장바구니를 사용할 것을 홍보하다가 그나마 재활용박스를 사용하려는데 테이프를 제공하지 않으니 소비자들의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불평하지 않고 벌써 2년이 지나 정착됐다. 이제 편리함으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웬만한 세미나나 워크숍에서는 참가자들이 텀블러를 가져와야 한다고 공지한다. 음료는 제공하되 일회용 종이컵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텀블러를 가져오지 않으면 목마른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때 볼멘소리로 항의했던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목마름과 편리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2019년 한 취업사이트가 친환경 생활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실제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은 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 생활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20대에서 70%대, 40대에서 80% 중반인 것을 보더라도 필환경에 대한 국민의식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필환경 생활 중에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의 엄니들은 천기저귀를 직접 빨아 아이를 키웠고 수세미라는 작물을 심고 가꿔 설거지용 수세미를 썼다. 천기저귀 대신 일회용 기저귀, 식물 수세미 대신 세제가 묻어 있는 일회용 수세미가 사용되고 있다. 그나마 옥수수 수세미가 출시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과 관심들은 기후위기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비자의 작은 변화는 기업, 지방자치단체, 정부로 옮겨가면서 나비효과가 발생한다. 기업 또는 기업에 대한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는 요소인 ESG경영이 기업과 행정의 화두가 올 한해를 장식했다. 수상소식도 전해온다. 다만 단순한 마케팅 키워드나 일회성 이벤트로 다룰 게 아니라 과거보다 더 절실한 자세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은 머리로는 이해가 잘 되지만 실천은 어렵다. 단순히 착한 실천이 아니라 지구촌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죄책감이냐, 편리함이냐.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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