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는 풀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주고 물과 영양분을 흡수해 잘 자라게 해준다. 여기에 빗대어 사회나 지역, 국가를 바탕에서 지탱해주는 민중을 민초(民草)하고 한다. 민초 스스로 활동에 나서거나 민초 가까이에서 활동하면 풀뿌리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대표적이다. 흔히 이를 지방자치제와 한 몸으로 여기지만 우리의 현실에선 상당한 괴리가 있다.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되려면 지방 정치가 중앙 정치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공천이 중앙 정당에 휘둘리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온전한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20여 년 전 헌법재판소의 견해처럼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념적 배경으로 한다.

'풀뿌리'라는 말은 지역의 소단위나 작은 규모를 내포하며 폭넓게 쓰인다. 풀뿌리 주민자치, 풀뿌리 봉사, 풀뿌리 나눔, 풀뿌리 창업, 풀뿌리 환경, 풀뿌리 소통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풀뿌리의 근간에는 소지역, 소시민과의 밀착이 자리한다. 이를 지향하며 태동한 언론이 바로 풀뿌리 언론(미디어)이다. '풀뿌리 언론'이라 불리는 지역신문은 1개나 2~3개의 시·군·구를 취재영역으로 지역주민과 밀접한 내용을 보도한다. 대부분 주 1회 종이신문을 발행하는 주간지 형태로, 현재 등록된 언론사만 1249개(문화체육관광부 일반 주간지 기준·인터넷신문 제외)에 달한다. 이름을 올린 주간신문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실제 발행되지 않고 있거나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마다 2~3개의 주간지가 있는 셈이다.

전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들이 언론의 윤리를 지키며 건전한 여론형성과 지역발전이라는 책무를 다하자며 결성한 게 바른지역언론연대(바지연)이다. 26년 전인 1996년 발족한 바지연에는 해남신문을 비롯해 51개 언론사가 가입되어 있다. 그동안 '바른 언론'의 소명에 일탈한 몇 개 회원사는 퇴출당하기도 했다.

바지연은 지난주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 서귀포에서 40개 회원사 220명이 모인 가운데 '풀뿌리 미디어가 희망이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우수사례 공유와 지역신문의 진단 및 미래 주제의 특강, 토의 등이 이뤄졌다. 지역신문을 포함한 우리나라 언론은 가짜뉴스 양산과 편파 보도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 합성어)라는 조롱 섞인 말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친 불신의 장막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우리만이라도 바르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보자는 게 바지연이 모임을 갖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현실에 가로 놓인 벽은 녹록하지 않다. 구독자는 떠나가고 몸담겠다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대부분 지역신문은 구독자 감소, 광고주 감소, 경영 부실, 인력난, 신뢰 상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풀뿌리 언론인 지역신문의 존재 이유이자 추구하는 방향은 '더 행복한 지역민을 위한 밑거름'이다. 이런 소임을 위해선 지역사회 교류의 중심과 공론의 장이 되고 권력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려면 무엇보다 민중, 민초라는 뿌리를 자양분 삼아 성장해야 한다.

지역신문은 지역사회와 운명을 함께 한다. 요즘 화두인 지역의 소멸위기는 곧 지역신문의 위기이기도 하다. 지역신문이 병들어가면 지역사회도 덩달아 병들어간다. 그래서 지역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지역신문의 존재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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